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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59화 - 지금도 과거도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3장 대재해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59화 - 지금도 과거도 -

개성공단 2020. 8. 28. 17:06

창문도 커튼도 모두 닫힌, 어둠을 머금은 실내

청소를 한지 얼마 안 됐는지 먼지와 냄새 같은건 전혀 없었다.

전체적으로 이상하게 깔끔한 방이였다

 

나로서는 왠지 불편했다.

깨끗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나 같은 인간에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방에, 평상시와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의 양부모

나인즈씨가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보라색 눈을 천천히 뜨면서, 침대 위에 걸터 앉고 있었다.

 

갈라이스트 왕국 때부터, 몇 년은 지났는데도, 달라진 모습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살이 좀 빠진 정도일까

 

사실은 인간 따위가 아닌 흡혈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인즈 씨의 다소 긴 입술이, 뺨에 선을 그려 가는 것을 보았다.

붕대가 감긴 두 손은 시트 위로 튕겨져 나와 있었다.

 

"뭐야, 귀한 손님이 왔는 걸... 루기스, 어서 들어오지 그래?"

 

나인즈 씨는 옛날 나를 마중 나왔을 때, 그대로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그리우면서도, 따뜻한 감촉이 가슴 속에 퍼졌다.

인간이란 아무리 발버둥쳐도 향수에는 저항할 수 없다는 건가

 

나는 준비된 의자에 걸터앉아, 어떻게 말을 돌릴까 하고 머리를 싸맸다.

입술이 묘하게 무거웠다

 

사실 이 방에 오기 전에, 할 말을 미리 떠오르고 있었다지만

방에 들어온 때 부터, 내 입은 어느 하나의 단어도 내뱉으려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군

상대와 과거와 같이 행동한다면, 나도 그만한 연기를 할 수 밖에...

 

"나인즈 씨, 조금 늦었죠?"

 

나인즈 씨는 내 말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것은 마치 그리워하는 듯한, 어딘가 장난기 어린 기색을 보이는 표정이였다

 

"너 말이야, 또 무슨 이상한 생각이라도 하고 있을까 하고, 예상은 했지만

설마 여자를 여러명이나 끼고 돌아올 줄은 몰랐어"

 

뭐요

아..아니 잠깐, 이 부모는 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야

 

나도 모르게 내 입가엔 오금이 저렸다

 

특별히 나는 여자를 끼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나인즈 씨는 이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말은 조금 삼가해줬으면 좋겠다

섣부른 말이 튀어나왔다간 내 목숨도 같이 튀어 나갈지도 모르기에...

아마도 주로 카리아의 손에 의해서겠지

 

나인즈 씨는 내 뒤에 있던 

카리아, 피에르트, 그리고 필로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난 이런 교육을 한 기억이 없어, 대체 누굴 닮은건지...

딱히 간섭은 안하겠지만, 불장난은 자제 하라고, 화상 입을지도 몰라"

 

나인즈 씨는 미소를 띄운 채, 실로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어깨를 가볍게 당기고, 썩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충고 고마워요, 조심할게요"

 

나인즈 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설마 인사만 왔느냐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나는 인사만 하러 온거지만, 내 뒤의 여자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곧장 카리아가 내 어깨에 손을 걸며, 입을 열었다

 

손가락이 조금 살점을 파고드는 느낌이 있었다

 

"이 놈의 출신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어서요"

 

어라, 고아라고 몇 번인가 말한 것 같은데

그저 자세히 이야기 해봤자, 할 것도 없으니까 말야

카리아의 은발이 시야 바로 옆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나인즈 씨는 카리아의 말에 잠시 표정이 부드러워 지더니, 곧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게 화제인가봐?

조금 전, 성녀 마티아와 가자리아의 여왕도 그걸 물어봤엇어

정확히 말하면,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아이, 그 말에 살짝 속눈섭을 울렸다

그리고 나서, 나인즈 씨의 얼굴을 들여다 보니

영리함을 발하는 그녀의 두 눈은, 정면에서 나를 관통하고 있었다

 

그렇군...

나인즈 씨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지, 그 시점에서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아마 마티아든 엘디스는 내 일이 아니라, 그 쪽을 알아내야 했을 것이다

 

문장교의 정점과 공중정원 가자리아의 대장

이들이 일부러 걸음을 옮기면서까지

나인즈 씨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야 할 것은 단 한가지

 

대성교의 성녀, 알류에노

 

알류에노가 원래는 나인즈 씨의 수중에 있던 존재라는 것은

적잖이 그녀들의 귀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됨은 깊이 파악해 두어야 하는 법이다.

그녀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생각을 품는 지

 

그것들은 필시 꺼림칙하게 필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알류에노가, 대성교 측의 성녀인 이상...

 

아르티우스라든가, 악령이든 뭐든, 알 수 있는 건 다 알아야 한다

 

나로서는 왠지 가슴이 찢긴 듯한, 착잡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자신의 연민을 들춰낸 다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였다

 

나인즈 씨는 카리아로 시선을 돌려, 

유난히 가벼운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음, 루기스의 출신인가

그렇다고 해도, 그저 고아라는 것 말고는 나도 모르겠는데

버려진 자식이였던 것을, 선대가 주운 거야

밤이 였음에도, 이상하게 눈에 띄는 아이였던걸 기억해"

 

선대란, 나인즈 씨가 고아원의 주인이 되기 전의 주인일 것이다.

가끔 누가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솔직히 내가 고아원에 주워지고, 바로 죽었기 때문에,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녀가 죽었을 때, 나 이외의 사람은 많이 울고 있었는데

나 혼자만 아무런 감정을 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인즈 씨는 선대에 대해서, 거의 입에 올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인즈 씨가 선대라고 불리는 인물을 싫어했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부터 나인즈 씨가 자신의 생각이라든가 하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였다

 

생각은 자신의 가슴속에 있으면, 그것으로 좋다고 하는 성질이라나 뭐라나

적어도 이 사람은 말이지...

 

이어 카리아가 나인즈 씨와 몇 차례 말을 나누며

남의 부끄러운 추억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자

피에르트가 문득 생각난 표정으로, 입술을 움직였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게 있는데...

그... 아까 말씀하셨던, 그 아이라는 건

루기스의... 아니, 마녀 알류에노 말씀인가요?"

 

피에르트의 질문에, 나인즈 씨는 보라색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내 쪽으로 시선을 옮기는 것 같았다

 

얘기했냐고, 그렇게 말하는 눈짓

나인즈 씨는 무표정한 얼굴로, 명확한 항의를 입술에 띄우고 있었다

 

아니, 대체 무엇을 항의하는 건가

나와 알류에노까 소꿉친구라는 것은 별로 비난 받을 것도 아니고

단지 사실일 뿐이다.

그 점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

 

자..잠깐, 그러고보니 피에르트에게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는데

 

하지만 뭐, 반대로 말하면 숨긴 기억도 없다

카리아가 피에르트에게 얘기 했는지도 모르지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시선을 돌리자

나인즈 씨는 순간 방 전체를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말했다면 할 수 없군... 그래, 알류에노의 일이야

옛날에 내가 돌보던 아이라서 말이야, 그래서 인품을 좀 알아"

 

그 말에 순간 실내의 공기가 무겁고 팽팽해졌다

 

나인즈 씨는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다행이야, 

나는 여전히 알류에노에게 질질 끌려다닐 줄 알았는데"

 

보라색의 눈이 조금 내 등뒤의 얼굴들을 향했다

그리고 나서, 조금 장난기 어린 것을 눈이 띄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락 짓고, 새로운 길을 내디뎠다면 그걸로 된거야

한번 길이 끊겼더라고, 다시 걸어야 할 길이 있게 마련이니까"

 

나인즈 씨의 그런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마음속으로는 무슨 소린가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무슨 말을 하고 싶읁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녀의 말을 받아 들일 생각은 없었다

 

"딱히 매듭을 지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때부터 나는 나이고, 그녀는 그녀, 거기엔 아무런 변함도 없어요"

 

다시금 공기가 삐걱거렸고, 동시에 또렷한 소리도 동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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