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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61화 - 감미로운 생각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3장 대재해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61화 - 감미로운 생각 -

개성공단 2021. 3. 14. 03:53

 

 

 

 

 

피에르트 볼고그라드는 요란한 울림을 느끼는 심장을

가까스로 달래며 자기 방 침대에 쓰러졌다

그녀의 뺨은 약간 달아오르고 있었고, 호흡은 몹시 거칠었다

 

그녀의 침착했던 사고가 지금은 소용돌이가 되어

머리 속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주 그렇지는 않지만, 당분간은 안정을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생각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은 방금 전의 이야기

 

루기스를 키워준 나인즈의 말이 아직도 묘한 무게와 열을 동반하며

피에르트의 가슴 속을 휘젓고 있었다

 

 

"미안해, 내 양육방법이 나빴던 것 같아, 좀 더 처세술을 익혔어야 했는데"

 

 

루기스가 방을 나서자마자

나인즈가 그런 말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그 후의 말을 피에르트는 잘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쉬운 말 정도는 알아먹었지만, 내용 전체는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쨌든 그 때는 침착하게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루기스가 한 말이 아직까지 가슴 속을 휘젓고 있었으니

 

 

그의 입에서 그 말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피에르트는 자신의 검은 눈이 참을 수 없는 열로 덮인 것을 깨닫고 있었다

 

몸이 끝없이 차가워지면서

마음 속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슬픔과

분노인지도 모를 감정에 오열마저 흘릴 것 같았다

사람은 생각 하나로 스스로 목을 짓누룰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안 그녀였다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솔직히 피에르트가 나인즈의 말을 천천히 음미할 여유 따윈 없었다

그저 정면에 서 있는 것만으로 벅찼고

분명 그녀를 옆에서 보면, 그녀의 몰골은 끔찍하고 가냘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인즈는 그런 피에르트

그리고 카리아와 필로스의 심정도 헤아린 듯이 말했다

 

그의 성장은 기쁘지만

그래도 끊어야 할 것은 있다고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안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자기 자식이 생기면 녀석도 좀 진정되겠지

남자란 몽상가지만, 아기를 보면 땅에 발을 붙이는 법이야"

 

 

자식, 자손, 아들, 딸 등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 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불리는 존재

 

...그것을 루기스에게서...

 

 

순간 반응이 뜸해졌다

머리 안쪽에서 망치로 박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았다

 

 

요컨데 나인즈가 무슨 말을 했느냐... 그건...

 

곤혹스럽기도 하고 기대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순식간에 피에르트의 가슴 속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목이 그녀 자신도 모르게 막히고 말았다

 

나인즈는 이마저도 다 예상한 듯 말을 이어나갔다

 

 

"아이를 이용하라는게 아니야

그저 루기스에게 빌미를 주라는 거야

누구든지 변하려면, 단락과 고비가 필요한 거야

그렇다면 빨리 하는게 좋아, 언젠가는 자식이 생길테니 말야"

 

 

나인즈의 말은 함축성을 갖게 했고

그러면서도 뭔가 부드럽게 느껴졌다

 

비록 맥락이 없는 얘기 였지만

나인즈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그 자리에 있던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다른 몇 가지의 대화가 더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피에르트는 침대에 누워 자신의 이마에 가는 손가락을 올려놓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직도 유독 입김이 뜨거웠다

 

 

그와의 사이에 자식을 이룬다...

 

피에르트는 생각했다

만약 그와의 사이에 그것을 이룰 수 있고

그렇게 해서 한 채의 집에 살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아니, 얼마나... 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것임에 틀림ㅇ벗다

 

피에르트의 두 손에 남을 만큼 감미로운 마음

하지만 그런 생각과 동시에

가슴 속엔 어쩔 수 없는 공포도 있었다

 

그와 함께 있고 싶다 했을 때, 과연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혹시 그는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나는 호되게 거절당하는게 아닐까

그렇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을까

적어도 똑바로 서 있을 수 있는 힘은 전혀 들지 않을 것이다

 

불안과 기대, 그리고 갈등

그 감정들이 꿈틀거리며 피에르트의 가슴팍을 기어다녔다

역시, 전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저 무거운 돌이 몸 안에 가득 들어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제자리걸음만은 할 수 없다

피에르트는 침대에 누운 채, 검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나인즈에게 이야기를 들은 것은

나 혼자가 아닌, 두 명 더 있었다

 

그 중 한 명인 통치자 필로스 트레이트가 어떻게 움직일 지는 알 수 없다

 

비록 루기스가 손을 잡은 일막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필로스라는 사람은 성급하게 일을 진행하길 원치 않는다

오히려 그런 질서나 정의를 따지는 사람은 순서를 중시한다고

피에르트는 그렇게 들은 적이 있었다

 

때문에 약간의 당혹감은 있을지라도

그녀는 바로 무엇인가를 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또 한 사람

카리아 버드닉은 다르다

허공을 가르지르는 은발이, 피에르트 눈꺼풀의 뒷면에 비치고 있었다

 

그녀와는 짧게 지낸 사이가 아니기에,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녀라는 사람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다

 

그녀의 다리엔 날개라도 달린 건가 싶을 정도로

피에르트는 그것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골똘이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행동을 할 수 없는 성질이다

 

카리아만큼 행동적으로, 그렇게 도도하게 살 수 있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빛으로 가득 채워졌을까

그녀는 매번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녀는 이번에 어떤 식으로든 행동에 옮길 것이다

그건 틀림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머리를 싸매고, 침대에 누워 

그저 그가 다시 마중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누군가와 그의 아이를 보기만 하는 것일까

그녀의 검은 눈이 찌그러지고, 그녀의 이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통증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녀의 몸은 매우 드거웠다

 

그것만은 승복할 수 없다

아니, 가만히 둘 리가 없어

카리아에게도, 엘디스에게도, 

그리고 마티아와 소꿉친구를 자처하는 여자에게도

그와의 미래를 넘겨줄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다른 직함도 빛나는 재능도 있지 않은가

달리 살아갈 수 있는 길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라

피에르트는 시트를 꽉 움켜쥐엇다

가는 손가락이 조금 침대에 파고들었다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의 길 밖에 없어

그의 옆자리에 있는 것, 그것 밖에 없는 것이야

 

검은 눈이 흔들리면서, 그 빛깔을 강하게 내뿜었다

실내에 내린 어둠 속에서, 더욱 깊고, 짙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당신이 아니면 안 되는데

당신은 내가 아니라도 좋다니... 너무 불공평하지 않아? 루기스?

 

너무 심한 격차야, 그것만은 바로 잡아야 해

 

 

피에르트의 볼에 미소가 떠오르며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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