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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1화 - 나의 적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3장 복음전쟁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1화 - 나의 적 -

개성공단 2020. 2. 24. 11:17

성녀 마티아는 입안에 피맛이

퍼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마티아는 숨을 헐떡이며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갈루아마리아 도시 내의 공방전은

문장교도들에게 하나의 지옥을

출현시킨 듯한 모습이였다.

 

도시 내로 들어가자마자, 폭우처럼 퍼붓는 화살,

예상은 했었지만, 희생자가 너무 컸다.

도시는 희생된 문장교도의 피와 유해가 섞이기 시작했다.

 

마티아는 입에 고인 피를 땅에 뱉어냈다.

피와 시체가 뒤섞인 냄새는 연약한 부녀자라면

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티아는 쓰러질 수 없었다.

왜냐면 그녀는 문장교도의 우두머리인 성녀이기 때문이였다.

 

'고오오오오오오'

 

위병단과 문장교도가 창을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하나의 음악처럼 들리는 듯 했다.

 

문장교도 군세도 위병단 못지 않았다.

수 자체는 조금씩 줄어가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사기를 떨어뜨릴 정도로

그들의 광신력은 낮지 않았다.

 

양측의 충돌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마티아는 이 전투의 결말을 예상하기 시작했다,

 

대성문 앞의 보루에서 내리치는 화살,

흉포한 송곳니를 드러내고 덤벼대는 병단.

그녀는 천천히 전황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아무리 위협적일지라도,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적어도 그가 올 때까지는

 

"성녀님! 전선의 일부가 붕괴되었습니다!"

 

라르그도 안의 비명 같은 말이

마티아에게 들려왔다.

 

멀리 반짝이는 시퍼런 칼날이 보였다,

이어지듯 어둠 속의 피의 섬광이 번쩍였다.

 

황금색의 금발과 눈동자를 가진 그는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알아보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머리 끝에서 발끝에 이르기까지

양단된 듯한 공포가 온몸을 기어올랐다.

 

저것이 이리로 오고 있다

 

저 황금은 수천의 병사를 밀어내버리고

자신을 향해 달려고 오고 있었다

 

뭐야 저건

 

마티아의 계산 속엔 저런 인물은 없었다.

혼자서 전황을 바꿔버리는 저런 사람말이다.

 

한 치도 흐트러짐없던 그녀의 표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틀림없어. 나는 저것의 손에 걸려 죽는다

...라고 마티아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아아, 여기서 끝인가.

마티아는 체념에 가까운 감정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고달프고 중책뿐인 인생이였다.

어릴적부터 성녀 두명과 함께 살면서,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나날들...

 

나에게 선택지란 없었다.

성녀라는 갑갑한 옷을 차려입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였다.

시퍼런 칼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주교님.

신자 여러분 미안합니다.

마티아는 성녀 자격이 없습니다.

 

그녀는 속으로 마지막 참회를 중얼거렸다.

 

그래, 나에게 성녀가 가치 있는 삶이였다면,

차라리 여기서 죽어서, 순교자로 남는 것이 더 좋을 거야

 

두 손이 저절로 기도하는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당신이 문장교도의 성녀 입니까?"

 

황금의 남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승사자의 장난일지도 모르는 것이였다.

 

마티아는 기도를 올린 채, 말은 필요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황금의 무릎이 흔들리고,

그의 시퍼런 칼날이 저승사자의 낫이 되어

성녀의 목덜미로 향했다.

 

"이 순간 까지 성녀 행세를 하는 건가?

나 참, 진짜 어이가 없내"

 

그 짧은 순간에, 비아냥 거리는 목소리가 마티아의 귀에 닿았다.

동시에 주위에 철과 철의 접합음이 울러퍼졌다.

 

마티아가 천천히 고개글 들었다,.

그곳에서는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시퍼런 칼날을,

은의 탁한 빛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지막 까지 고상한 척 하고 있으시내. 개같은 년"

 

두 개의 칼을 달빛을 반사시켜, 가볍게 어깨를 움직이는 그림자.

녹색의 옷을 입은 협력자를 바라보며

마티아는 눈동자를 멍하니 깜빡였다.

 

루기스라고 불리는 모험자가 거기에 있었다.

 

 

 

*

 

 

 

내가 굴욕을 딛고서라도 여기에 돌아온 이유는

결코 쉽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결코 누군가를 짓밟기 위해 돌아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나처럼 업신여기고 짓밟혀온 그들을

버리기 위한 것 따위도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난 세계의 그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성적으로 올바른 선택은 아니겠지만

문장교도와 성녀의 손을 잡는 수 밖에 없다.

 

뒤에는 성녀 마티아, 정면에는 영웅 헤르트 스탠리.

 

"정말 이곳에 올 줄은 몰랐어요. 루기스 씨"

 

헤르트는 성녀를 죽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조금도 조급한 모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살짝 좋지 않은 예감이 스쳐지나가는 듯 했지만

 

"동감이야. 나도 방금전까지 여기 서 있을 줄 몰랐어.

많이 기다리셨나?"

 

가벼운 어조로 그렇게 대답하면서,

칼을 손으로 돌렸다. 신기하게도, 손이 칼에 매우 익숙했다.

이 정도라면 조금의 합을 겨룰 수는 있을 것이다.

 

"아뇨,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헤르트는 검을 들며 말을 한마디 씩 쏟아 내었다.

 

"여러가지로 궁금한게 많은데, 우선 한가지만 물을게요.

루기스 씨, 당신은 저의 적입니까, 아니면 저의 아군 입니까?"

 

그건 정말 이상한 질문이였다.

 

전쟁터에서 눈앞에 맞닥뜨린 상대에게

아군인가 적인가 하고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거 상관없이 냅다 싸우는게, 전쟁터의 규칙이다

 

하지만 묻는 이상은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틀림없이 서로 적이 아닌가?

너는 그 쪽이고, 나는 이 쪽이다.

이 이상으로 알기 쉬운 것이 어디 있겠어?"

 

물론 저 놈을 향한 증오도 약간 섞여 있었고,

그의 재능에 대한 질투도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그렇습니까? 유감입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너무나 아쉽습니다"

 

시퍼런 칼날이 반짝였다.

조용하고 기묘하기까지 한 고요함이 전장을 뒤덮었다.

한숨을 내쉬는 듯한 헤르트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럼, 나머지는 전장의 방식대로"

 

두 사람의 자세가 갖추어졌고,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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