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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64화 - 호칭과 가슴을 뒤덮는 오한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3장 대재해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64화 - 호칭과 가슴을 뒤덮는 오한 -

개성공단 2021. 3. 17. 01:37

 

 

 

 

 

 

괴뢰도시 필로스 외곽에는 문장교병 및 용병들이 빼곡히 주둔해 있었다

수는 모든 것을 합해 수백이 될 정도 였다

 

이 병사들은 필로스를 타 세력에 침공당하지 않기 때문임을 물론이고

오히려 폭설로 인해 활발해진 마수들로부터 도시를 지키긴 의의였다

 

도시 필로스 자체에도 민병이 있긴 하지만

그 규모를 생각하면, 보강이 필요하다고 마티아가 생각했을 것이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야외 임무에 시달리는 병사 및 용병들은

술이나 한 잔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참이였다

 

그러던 와중 병사들과 용병들을 눈여겨보며, 입을 여는 자가 있었으니

 

 

"이제 다친 곳은 어때? 아직 요양 중이라고 들었는데"

 

 

씹는 담배를 입안에 물고, 가볍게 냄새를 코로 맡으며

자기도 방긋 웃으며, 그러면서도 친근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자가 향한 상대인 브루더는 모자 테두리에 손가락을 누르며, 목을 울렸다

그 표정에는 무엇인가 부끄러운 듯한 것이 떠 있었다

 

"그만둬 고용주, 난 언제까지고 침대에 누워 있는 그런 자가 아니란 말야"

 

 

갈색의 머리카락이 허공을 날며, 하얀 눈을 휘저어갔다

그 모습은 다소 어색하지만서도, 조금 편안해 보였다

 

일찍이 이 필로스를 함락시킨 소란 중

로조라는 마인에게 주어진 큰 상처

잘못하면 용병 일을 그만둘 수 있을 정도였는데

의외로 잘 극복해 준 것 같았다

 

솜씨 좋은 의사가 있었던걸까, 아니면 그녀 자신의 생명력일까

 

어쨌든 무사한 것은 경사스럽기 짝이 없다

어쨌든 그녀는 유일한 나의 옛 친구니 말이다

선물로 새로운 와인을 사줄 만하다

 

 

아아, 그런데

 

 

"언제부터 나를 뒤따라오게 된 거지?"

 

 

어깨를 다소 움츠러들면서, 가늘게 폈다

아까부터 브루더는 내가 걸음을 멈추면, 똑같이 걸음을 멈추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다시 뒤를 따라왔다

마치 병아리처럼 말이다

 

브루더는 나를 흉내내듯이 어깨를 크게 움츠리고, 갈색 눈을 둥그렇게 떴다

 

 

"나도 입장이 조금 복잡해서 말이야

성녀님이 고용주 혼자 어디라도 뛰쳐나가지 않을까, 꽤 염려하신 모양이야"

 

 

브루더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가, 마티아인가

그녀라면 이렇듯 당당하게 사람을 감시할 만 하다

의외로 대담무쌍한 인간이였군

 

아니, 확실히 베라 건은 내가 너무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대로 감시역까진 필요 없지 않을까

 

나도 생각없이 사는 사람은 아니란 말야

의외로 생각을 좀 하고나서, 다리를 움직이고 있다

좀 더 신용을 해줬으면 하는데...

 

 

숨을 내쉬는 나의 모습을 보고

브루더는 어딘지 재미있다는 듯이 말을 늘어놓았다

 

 

"흐흐흐, 싫어하는 모양인데, 차라리 어디로 숨지 그래?"

 

 

브루더는 조롱하듯 말했다

아무리 옛 친구여도 이건 한 방 먹여주고 싶군

 

성녀 마티아, 그리고 엘디스에게도 대략적인 이야기는 다 전했다

첩의 공주를 둘러싼 환경, 대재앙, 마인에 대한 것

그리고 내가 구상하고 있는 것 말이다

 

이 이야기를 어디까지 그들이 집어삼켜 줄지는 모른다

어쨌든, 모든 것이 신빙성 있는 이야기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고

그런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직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움직여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조직이란 대개 그런 것이다

규모가 커질수록 의사결정은 둔중해진다

때문에 마티아나 엘디스가 어떻게 결론을 내리든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문장교와 가자리아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나 자신과는 다르다

 

 

나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멍하니 모든 것을 방관하고만 있을 순 없다

이제 그런 지점은 이미 지나가버렸으니 말이다

 

씹는 담배 냄새가 쇳냄새에 섞여 콧구멍을 찔렀디

 

 

"어이, 고용주... 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물어봐도 되냐?"

 

 

브루더가 이상하게 거드름을 피우듯 입을 열었다

예전의 일을 떠올려도, 좀 처럼 없던 행동이였다

어느 쪽인가하면, 그녀는 솔직하게 말을 해야 하는 성질이였다

 

나는 곁눈질로 말을 재촉했다

살짝 입술을 굳게 다물고 말이다

 

 

"조금 들었을 뿐인데, 마인이라던가, 대마라던가...

그건 고용주가 무조건 개입해야 할 문제인가?

이제 충분치 않아? 책임이라는 게 있다면 충분히 했을텐데 말야"

 

 

갈색의 눈이, 몇 개의 감정을 섞으면서 이쪽을 보았다

 

과연... 이것은 그녀 나름대로의 걱정의 말일 것이다

말 마디마디마다 흔들리는 감정이 어른거렸다

 

볼이 느슨해졌다

아아... 정말이지, 예전과 그녀는 전혀 다르지 않군

 

 

"듣기로는 이제 개인이 어찌 해볼 문제가 아니라잖아

상대는 재앙이야, 그걸 억지로 고용주가 힘쓸 필요는 없잖아"

 

 

아니면 무슨 목적이 있냐고, 브루더는 말을 이었다

 

나는 잠깐 틈을 두고 입을 열었다

 

 

"글쎄... 큰일을 하기 위해서... 원래는 거기에 걸맞는 영웅, 용자가 있어

걔네들에게 맡기면 편해, 그저 자고 기다리면 안온한 평화를 가져다 줄거야"

 

 

눈꺼풀 뒤에, 일찍이 본 광경이 비치고 있었다

 

황금의 자들, 애타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손을 뻗어준 빛나는 그 등

나는 지금 그 등에 손가락 정도는 걸치고 있는 것일까

그것만큼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숨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심장이 묘하게 가벼웠다

 

 

"하지만 이젠 없어, 영웅은 없어...

그렇다면 이제 영웅이 될 수 밖에 없는 거야"

 

 

그 태양 같은 영웅이 없다면

따라잡기 위해 이 손으로 베어 쓰러뜨린 것이라면

이제 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리가 없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 적당한 장소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브루더는 굳은 얼굴을 지었고

나는 그걸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복잡할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쓸데없이 걱정을 끼쳐 버린 것 같았다

 

입술을 조금 깨물며, 가식적인 입맛을 다셨다

 

 

"뭐, 일이 안정되면

좋은 와인을 마시고, 사슴고기를 먹자고

베스도 함께라면 좋겠지"

 

 

안타깝게도 베스타리누는 베라 감옥에 있는데

언젠가 이 자매와도 술잔을 주고받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일이 끝난 뒤가 되면, 얼마나 나중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말 한 마디는 의외로 위안이 될 것이다

 

말을 마치고, 문득 브루더의 얼굴을 쳐다보니

그녀의 표정은 묘한 알력을 내고 있었다

 

뭐야, 그 얼굴은?

 

 

"...꽤나 남의 여동생과 친해졋구나, 고용주

'애칭'으로 부를 만큼 말이지..."

 

 

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

나는 이해가 갔다는 듯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베스타리누에 대해 베스라고 부르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

이상하게 생각되는데도, 전혀 이상한 점이 없었다

하지만 브루더의 눈에는 둘도 없을 소중할 여동생

뭔가 마음에 걸리기라도 하는 건가?

 

베라에서의 일을 간추려 말했지만

여전히 브루더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갈색의 눈이 가늘게 이쪽을 보고 있었다

 

잠시 무언의 시간이 흐르더니, 브루더가 말했다

 

 

"그렇다면 나도 본명으로 불러줬음 좋겠어

둘이 있을 때는 말이야, 브루더라는 이름이 싫은 건 아니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커다랗게 떴다

갑작스런 그녀의 말투에 약간 당혹감이 있었다

 

브루더라는 이름은 원래 그의 아버지라는 이름, 그건 알고 있었다

 

나로서는 솔직히 이쪽이 친밀감이 있고

그녀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기에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본명이라면 왠지 익숙하지 않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쪽을 똑바로 응시하는 갈색 눈은

아마 나를 놓아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쓴웃음을 짓고, 어깨를 움츠리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도 그제서야 만족해 준 것 같았다

마음을 허락해 주었다면, 나로서도 기쁘긴 한데...

 

 

그러다 문득 실눈을 뜨니

펑 하는 소리가 나면서, 눈이 세차게 불었다

 

주둔지 전역에 눈이 날라왔다

왠지 또 오늘 밤도 눈이 많이 쌓일 것 같았다

귀찮은 일이군... 하얀 입김이 코 앞까지 어른거렸다

 

빨려들어갈 듯한 잿빛 하늘이 뒤틀리며 소리를 토해냈다

 

순간 심장이 울렸다

 

 

가슴 언저리에 뜨거운 감촉이 스치고

허리춤의 보검이 소리를 울렸다

온몸의 피하 묘하게 요동치는 기분이였다

 

왜 이러지

묘한 설렘이 일었다

아주 싫은 예감이 들었다

그야말로 일찍이 느낀적이 있던 오한

마치 등뼈에 얼음이라도 파고든 느낌

 

 

 

마인, 그리고 대마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귓전에 들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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