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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12화 - 성문 밖의 공방전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4장 마인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12화 - 성문 밖의 공방전 -

개성공단 2021. 4. 10. 00:17








왕도 성벽 밖
갈라이스트군을 거느린 네이마르 글로리아는
목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평시대로의 목소리 따위는 도저히 낼 수 없었다
최소한 길들여진 귀족다운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건 소리 지르는 것뿐
땋아 내린 긴 머리카락이 몹시 흔들렸다




"쳐 죽여라! 목숨을 버릴 때가 있다면, 지금이며! 여기다!"




주위에 있는 병사들에게 격문을 띄우고
스스로도 말 위에서 활을 겨눴다
오른손에 낀 장갑이 찢어져 뭔가가 손가락 살점을 파고들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쇳조각인가 뭔가를 맞았을 것이다

머리카락을 걷어올린 이마에서 한 줄기 피가
줄줄 흘러내리며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는 듯 네이마르는 활을 힘껏 잡아당겨, 쏘아댔다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어둠속의 물체가 공기를 휘감으며 나는 소리였다

멀리서 보니
그것이 짐승의 얼굴을 한 마성을 관통했음을 네이마르는 깨달았다
동시에 그녀는 이미 두 번째 화살을 짜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목소리를 울렸다

눈앞에서는 마수의 군사들이 다시금 준비를 갖추고
돌격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전 병력 모두 자세를 취하라
한순간도 눈을 감는 것을 허하지 않는다
저 놈들에게 죽임을 당한 부모 형제, 전우, 연인을 떠올리거라
더 이상 한 사람이라도 죽여서야 되겠느냐!!"





목소리는 이미 잠겨 있었다
하지만 네이마르는 멈출 수 없었다
마수들의 무리를 앞에 두고 전선으로 나가 군사를 떠받쳤다

어쨌든 나는 지휘관이다
평소 잘난 척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좋은 음식을 먹고 탄력 있는 침대에 눕는 특권을 가졌다

그러니 물러설 수 없다

네이마르라는 용감함을 상징하는 남성 이름을 부여받아
군에서 살 길밖에 몰랐던 그녀는
전쟁터에서 살아 전쟁터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였다
그녀는 쉰 목소리를 울리며 화살을 쏘았다

다음 순간 마수들의 목숨을 건맹진이 시작됐다
모래 연기 냄새가 콧구멍을 때렸다
병사들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채
지휘관을 지키듯 창을 겨누고 있었다



그렇게 피가 튀겼다

더 이상 인간의 것인지 마수의 것인지 등 알 수 없었다
사후세계와 삶의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여기일 것이다

여기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었고
힘을 빼다 죽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 이곳은 기막히게 평등한 장소였다

그런 경계선에 선 네이마르는 이를 깨물었다
그리고 머리를 굴린렸다

그 머릿속에서는 지금까지 다소나마 붙어 있던
귀족의 자랑이니 도덕심이니 하는 것은 사라지고 있었다



생각하는 건 딱 하나
자신이 왜 이렇게 뒤떨어졌느냐는 것뿐

리처드 대대장이라면 군사를 더 잘 써서 마수를 몰아붙일 것이다
발레리 브리트니스 장군이라면
빼어난 무위로 단숨에 해치울 게 분명하다

나에게는 그 어느 쪽도 없다
그저 평범하게 군사를 전진시켜 창을 맞물릴 뿐
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적어도 그 대마처럼 군사를 몰아갈 방도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대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네이마르는 적 마병의 위협적인 돌격을 지켜보다가
순간적으로 두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돌격병 앞으로 나오도록!"




이제는 예절이고 뭐고 없었다
폭력적인 말투로... 일반적인 지휘관처럼 말했다

그 말에 넉살좋은 표정을 지으며
돌격병이라 불리는 병사들이 본진 배후에서 나섰다

돌격병이라고 하면 듣기 좋겠지만
요컨대 이들은 예비병 같은 것이였다
수는 백에도 못 미쳤고, 철수 시에는 호위를, 필요에 따라 유격을
그런 역할이기 때문에 가벼운 옷차림이며, 방패도 들지 않았다
그러니 죽은 사람의 발생과 교체가 심해서 선호되는 것은 아니였다

좋은 점이라면 월급이 높아 술이 우선적으로 돌아갈 정도
어느 쪽인가 하면 용병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예에, 부르셨군요, 아가씨
도망치실거라면 어서 빨리하시는게 좋을겁니다"




술기운에 취한 목소리였다
전장의 전선에 있어 돌격병의 대장에게선
전혀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과거에 머릿속이 깨지고도 살아남았기에
이성이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평소 네이마르라면 그 말투에 벌써 화가 치밀어 오를 판인데
지금쯤은 감정의 일체를 버리고 말했다




"돌격대장, 돌격을 명한다
적 중앙 오른쪽을 향해, 전병력을 이끌고 돌격하라"



감개고 뭐고 하는 목소리로
네이마르는 돌관병들에게 목숨을 버리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 눈은 병사들을 한눈도 쳐다보지 않고 전장의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대장은 대답을 위해 입을 열었다





"괜찮겠습니까? 반은 뒤질거 같은데요"

"상관없습니다
승리를 위해 죽으세요
그로써 왕도를 되찾겠습니다"



 

순간적인 틈도 없이 네이마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언제나 일사불란한 통제 아래 있는 듯한 마병들의 돌격
그것은 틀림없는 위협이었다
붕괴시킬 틈도 없이 인간을 능가하는
개개인의 능력에 그저 압살될 뿐이다
네이마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기껏해야 전선을 유지하는 정도

그러나 돌격은 달랐다
조금 보조가 맞지 않는, 흐트러짐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런 맥락도 없이 놈들의 통제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양동도 이제 한계다
여기서 저들의 돌격부터 끊어내, 뭔가를 이루어야 만 할 것이다



" 음...그렇다면
특별 보수는 배로 받는거네!
지휘관님, 우리들은 돈 버는 맛에 사는 거라고!"




마수의 머리를 부수기 위한 망치를
두 자루 어깨에 걸치며 남자는 말했다
이젠 지휘관에 대한 존댓말도 없었다

네이마르는 여전히 눈길도 주지 않고
부르는 값을 치르겠다고 그렇게 말했다
남자가 뺨에 강한 미소를 지으며 킁킁거리며 고개를 끄덕였ㄷ

그리고 네이마르가 입을 열었다.





"죽음을 두려워 말라
네놈들의 뒤에는 모든 군사가 있으니 말이다... 돌격!"




네이마르의 구령으로 돌격병들이 잰걸음으로 달려갔다
비교적 가벼운 옷차림의 이들은 여느 병사보다 훨씬 빨랐다

그러나 죽음은 늘 가까운 곳에 있었다
돌격하자마자 몇 명이 마수의 발톱에 걸려
피를 배와 머리에서 뿜어냈다

돌관병의 발밑이 피에 젖고 뺨이 더러워졌다
하지만 누구 하나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역할이기 때문이라든가 하는 시시한 것이 이유는 아니였다
그렇다고 해서 보수나 마수들에 대한
증오만이 이유인 것도 아니었다

돌격병에게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그 행위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
전우를 돕기 위해서인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인가
그것이 좋은 것일수록 좋았다

하지만 승리를 위해 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자, 중요한 것이였다



최근 얼마 동안은 철수만 하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마수들을 상대로 몇 번이나 고뇌의 패전을 계속했다
습격을 받는 촌락을 저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있었다
급기야는 왕도마저 버림받고 만 것이였다

그래서 이번에 지휘관 네이마르는 말했다

승리를 위한 초석이 되라고
대장은 숨을 들이마시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핏기가 거센 사나이였다




"지독하군 마수! 남의 나라에서 잘도 해주었겠다, 죽어라!"




원심력을 얻은 망치가 휘둘렸다
퍽, 거친 소리를 내며 개 얼굴을 한 마수의 두개가 터져나갔다

네이마르는 돌격병들의 돌격을 눈에 넣었다
지금 눈에 처음으로 색채가 깃든 것 같았다

문장교 지휘관들도 조금 늦게나마 이쪽에 맞춰
전선을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이들을 지원하는 귀족 사병의 모습도 약간 보였다


아무래도 문장교에도 눈치가 빠른 지휘관은 있는 것 같았다
고마운 일이지만 동시에 꺼림칙한 듯 네이마르의 눈빛이 일그러졌다

네이마르로서는 문장교의 속셈이 뻔했다
아마도 마수를 무찌르고 가장 먼저 성문을 통과함으로써
왕도에서의 지지를 얻으려는 것일 게다

그렇게 되면 왕도의 백성들은 다소나마 문장교를 내세울 수도 있다
물론 참으로 귀찮은 일이 되겠지



하지만 이미 늦었다
모든 승리를 거머쥐는 것은 우리다

네이마르는 다시 목소리를 울렸다
이젠 말도 안나오는 목소리긴 하지만
모든 갈라이스트병이 호응해, 마수들을 감싸듯이 돌격했다

성문 밖 공방이 그 매듭을 지으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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