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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17화 - 학문과 교의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4장 마인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17화 - 학문과 교의 -

개성공단 2021. 4. 11. 02:19








검은 선이 하늘을 달렸다
다음에는 도끼가 중력에 아랑곳하지 않는 기세로
사람의 턱과 두개를 깨뜨리고 있었다
습한 공기 속에서 비린내 나는 뇌수가 흩어져 갔다

하지만 단 한 번의 공격에 그 도끼는 멈추지 않았다
긴 자루가 둥글게 원을 그리며 휘둘러져
다루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살을 도려냈다
또 피가 즐거운 듯이 튀었다

도시 필로스의 훈련장
본래 병사들의 활발한 목소리가 난무하고
현 통치자인 라르그도 안에 반기를 든 자들이
시끄럽게 땅을 구르던 그곳은 지금 놀랄 만큼 조용했다

원흉은 강철공주

철갑옷에 피를 바르며
베스타리누 게르아가 소리를 질렀다
철의 싸늘한 빛깔이 그 소리를 더욱 차갑게 들리게 하고 있었다




"실망입니다... 제 마음은 매우 차가워져 있습니다
저는 정한 일을 어기는 자를 싫어하는 사람이거든요
설마... 감히 배신을 저지를 줄이야"




길게 째진 눈동자가 투구 안에서 형형한 빛을 뿜어냈다
그 말에 반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위의 문장교병들은 동요의 정점에 달해 있었고
베스타리누를 흠모하는 용병들도
그녀에게 말참견을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피에 젖은 훈련장은
이제 베스타리누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칼을 들고자 하는 자가 또 있습니까?
현명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만..."





베스타리누의 눈앞에는
아직도 십여 명이 창과 검 같은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
조금 전 그가 턱과 뇌장을 갈가리 찢겨진
부대장의 아래에 있던 반란병들이였다

그러나 베스타리누의 도발적 목소리 앞에서
더이상 나아가려는 사람은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건만
이제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손가락 끝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무기를 소지하고 있다고 해도 고작 그 정도 인 것이였다

그들도 그들이 믿는 정의와 지혜를 위해 용기를 내고 칼을 들었을 터
그것은 틀림없는 진실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정의와 지혜를 굴복시키는 것은
부조리라는 이름의 거대한 힘이였다
그것을 넘지 않으면 이상 따위는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베스타리누는 도끼를 휘둘러 자루를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유유히 서서 갑옷을 입고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평소 그녀의 모습과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친 행동이었다
여느 때의 철 같은 냉철함은 오간 데 없었다는 것이였다

그것은 단지, 그녀의 불쾌함, 초조함으로부터 새어나오는 것이였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는데




내가 필로스에 가는 동안 집 좀 봐주겠어?




그것이 베스타리누에게 주어진 임무
하지만 지금, 자신은 그 명령을 어기고 여기에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양심의 가책이라는 바늘로 마음을 찌르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알고 있어도 여전히 계속되었다

그러니까 빨리 귀환을 완수하고 싶었다
베스타리누는 초조함을 멈추지 못한 채, 다시 도끼를 휘두르는 순간...

훈련장을 관통하는 목소리가 울려펴졌다





"멈춰주세요, 더 이상의 피는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자연스럽게 병사와 용병들의 이목이
목소리를 발하는 한 곳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이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문장교 사람이라면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몸집이 작으면서도 당당한 행동으로
목소리의 주인인 라르그도 안은 훈련장에 들어섰다

그 모습은 여느 때와 같은
 경쾌한 느낌이 들게 하는 차림이 아니라
문장교도로서의 정장인 예복을 입고 있었다

본래 의식에만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은 것을
어째서 안이 입고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자리의 모두를 일순간 침묵시킬 만한 효과는 있었다
안 옆에서 브루더와 베스타리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안은 부드럽게 입술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반기를 든 병사들은 물론이고
아직도 동요 속에 있는 병사들의 마음을 달래듯이 말이다




"물러서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들도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들으라고, 안은 말을 이었다
그러고는 질문했다, 정말 이 방법이 옳겠느냐고 말이다

설령 사상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칼을 들고 상대의 배를 꿰뚫는 것이 문장교도의 모습인가
말과 지성이 아니라 무기에 호소하고 있지 않는가

이것은 아니다
지혜와 이성을 예찬하며 지고의 계단을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우리가 그렇게 폭력에 모든 것을 맡겨도 되겠는가

대립은 피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말을 주고받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은 머릿속을 감아내는 듯한 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바로 그것이 안의 재치였다
몸짓도, 목소리의 상태도, 표정의 세세한 부분까지
사람의 마음을 기울이기 위해 이용되는 것이였다
협상할 때 중요한 것은
한순간이라도 상대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니 말이다



루기스처럼 흥분시키는 것도
마티아처럼 이끄는 것도 아니였다
안은 그것은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님을 잘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한 발짝 멈추게 하는 재주는
아무에게도 지지 않는다
안은 다시 엄숙한 분위기을 띠며 말했다





"필로스의 대리 통치자로서
지금부터 제가 살레이니오 님을 만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선도 역할을 맡으십시오
설마 문장교 신도인 여러분들이 이론을 제기하진 않겠죠?"




그것은 안에게 드문, 답변을 허락하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면전에서 거역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 있는 많은 이들은 믿음이 깊은 문장교도들
문장교의 교의에는 이의를 발하는 것이 어려웠다
게다가 무력에서도 베스타리누과 용병들이 으르렁거리니
고개를 저을 리 만무했다

반란병 중 한 명이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의 눈동자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라르그도 안 님, 한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그럼 당신은 우리들을 벌하지 않겠다고,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안은 반사적으로 눈을 들어 말했다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 물론입니다, 살레이니오 님과의 회담이 잘 되면
그럴 필요도 없게 될 것입니다"




옅은 미소가 안의 뺨에 떠올랐다
하지만 어딘가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에
여느 때의 그녀와 다른 위화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사람을 믿게 할 만한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반란병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안을 위해 앞장서기로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안은 하나의 광경이 떠올렸다
실제로 본 것은 아니고, 전해 들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일찌기 갈루아말리아 공방전에서
루기스는 말 한마디로 빈민굴의 주민들 열광시키고
그들의 손에 무기를 들게 해서, 전쟁터로 몰고 갔다고 한다

그때 그가 가슴에 품은 것은 무엇일까
흥분일까, 쾌감일까... 아니면 다른 것일까



안은 지금에 이르러 생각하니
그건 분명 지금의 나와 같은 기분이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남을 이용하는 것은 최선의 선택이긴 하지만
마음에 가시가 돋는 법

아니, 그 사람은 의외로 좋은 사람이니까
어쩌면 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웃음거리가 따로 없겠군
대악이라 불리는 사람이 이리 약할 사람일 줄이야

브루더가 주위에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안을 향해 귓속말을 했다



"진심이에요? 이제 와서 평화로운 대화?
하긴... 문장교라는 사람들은 그런게 맞을지도 모르겠내"




안은 조금 우스운 듯 웃었다
그러고는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브루더 님, 학문도 교의도...
어짜피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결코 모시는 것이 아니란 말이죠"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모시는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라고 안은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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