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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32화 - 깨지는 세계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6장 동방 원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32화 - 깨지는 세계 -

개성공단 2021. 5. 6. 00:58





곤혹과 두통이 머리를 덮었다

그것은 분명 목구멍으로 넘어간 술 때문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성녀의 말이 먹혀들었기 때문이였다

약혼을 하죠, 저랑 당신끼리




아픔을 참지 못하는 머리로 그녀의 말을 되새겼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다시 물어볼 정도로 나는 대담하진 않았다

손을 잡은 마티아의 손끝이 부드러운 감촉과 열을 전해왔다
마티아의 눈동자는 이것이 술자리의 농담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다시 생각했다
마티아는 이를 정치 이야기라고 불렀다
결국은 정략결혼을 하지 않겠느냐는 권유인 셈이였다

다국가 간의 다툼이나 다툼을 피하기 위해
내가 문장교 소속임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것... 정치 이야기...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바보 같으니, 설마 그럴리가?


마티아의 손을 되잡았다
생각해보면 그녀의 손가락은 이렇게 가늘었던가
전에도 한번 어디선가 눈치챘어야 했는데,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녀는 손가락 끝을 조금 떨고 있었다
나는 마티아의 눈동자를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예쁜 파란색을 띠고 있었다





"마티아, 내가 어떤 일을 진행했는지 몰라도
솔직히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기뻐
하지만 처음이라서 그런지, 솔직히 좀 당황스러워"

"저도 처음이에요, 이런 일은"





마티아의 말은 감정에 흔들리는 듯했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말을 내뱉었는지 그걸로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외의 대답은, 그녀에 대한 모욕일 것이다





"마티아 미안해, 정치로 따지면 네가 옳을 거야
하지만 나에게는 소꿉친구였던 연인이 있고
그리고 단 하루도 그녀를 잊은 적이 없어"





순식간에 마티아의 표정이 비통하게 일그러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그런 얼굴을 할 줄도, 눈동자를 글썽일 줄도 알고는 있었지만
웬일인지 배와 머리가 둔탁하게 아파왔다
소꿉친구 이야기를 계속할 때마다 고통은 심해졌다

누군가의 기대에 어긋난다는 것은 언제나 최악

나는 지금부터 최저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가 여기 있는 것도
그녀와의 약속이 시작이였어
언제든 기사가 된다면, 데리러 가겠다고 말이야"





마티아는 내 손을 꽉 잡은 채 천천히 뜸을 들였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어요...."




평소 같으면 매끄럽게 다듬을 수 있었던 말이
지금은 갈기갈기 찢어져 흘러나왔다

나에게는 그녀에게 할 말도, 그것을 위한 자격도 없었다
난 그녀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지금 배신해버렸으니까

잠시 방안에 정적이 찾아왔다
마티아는 내 손을 양손으로 움켜쥔 채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냥 그걸 보고 있을 뿐이었다





"루기스, 저는 최저의 여자입니다
그걸 감안하시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어요?"


"......응"





마티아가 형편없는 여자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그녀는 최고다
하지만 그녀가 그런 말을 원하는 건 아닐 거야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소꿉친구와는 오랫동안 만난 것 같지 않군요
반면에 저와 당신은 오랫동안 함께 싸워 왔습니다
당신을 힘들게 한 날도 있지만
지금은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다고 스스로에게도 자부할 정도에요
그건 잘못된 생각이였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예전의 생각을 잊을 순 없다고
그렇게 말씀 하시는 것이군요"





답을 구하는 투가 아니라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듯한 말투였다
그녀는 살짝 눈가를 누르듯이 하고 나서
마티아는 다시 한번 내 손을 잡았다

손끝을 떨면서도 그래도 뭔가에 매달리듯이 힘차게 말이다

한숨을 내쉬고 나서 마티아는 시선을 올렸다





"저도 느슨해졌군요
정치적 측면에서 약혼을 강요해야 할 텐데요
이런 협상의 의미도 모르는 짓을 해버리다니..."





늘 하는 마티아의 목소리였다
아직 받아들일 수 없는 감정은 남기면서도
여전히 평정을 가다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성녀답다고 하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그녀가 가면을 써버린 것 같아
쓸쓸함마저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에게 그것을 이러쿵저러쿵하는 짓은 할 수 없을 것이지만...

마티아는 나에게 이것 하나만을 알려달라고 물었다




"그분의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지금도 갈라이스트 왕국에 살고 계신가요?"






그러고 보니 마티아는 이름도 모르는 상태였군

나는 그녀의 침착한 모습을 보고
술에 다시 입술을 갖다대며 말했다





"아마 너도 알 거야, 이름은 알류에노
지금은 대성교의 성녀가 된 것 같아
그래서 만나기도 쉽지 않아"


"아, 그렇군요"





순간, 목소리의 색깔이 바뀌었다

마티아의 눈빛이 짙어지고
방 안의 공기가 긴박해지면서 보다 농밀한 것으로 변해갔다
썼던 가면이 다시 찢겨진 기색이 역력했다

슬픔이나 분노가 아닌
더욱 강렬하고 사람을 짓누르는 감정이
그녀의 눈동자에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별로 듣고 싶지 않았던 농담이네요
루기스, 만약 사실이라면..."




마티아는 다시 내 두 손을 잡았다
그녀의 얼굴이 다가와 숨소리가 중첩될 것 같은 거리였다





"당신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누군지 다시 한번 생각해 주세요
알류에노는 대마 제브릴리스와 가짜 영웅 토벌령을 내렸습니다
이것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당신이라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가짜 영웅 토벌령

대성교가 그 말로 가리키는 인물은 아마 한 명일 것이다
정의는 다를지 몰라도 어떤 의미로 내려진 명령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알류에노의 이름으로 말이다, 최악이군





"……듣기 싫었던 말이야
하지만 성녀의 말인지, 알류에노의 말인지는 몰라
만나서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는 말이야"




용병도시 벨페인도, 프리슬라트의 대신전에서도 그녀는 그녀가 아니였다
아르티우스라는 고대의 영웅이 알류에노의 몸으로 멋대로 행동했을 뿐

그렇다면 이번 토벌령도 알류에노의 의지인지는 알 수 없다
이제 그녀의 말을 들으려면 아르티아를 죽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단이 있는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결과가 어떻든 찾지도 않는 것과 찾지도 않는 것은 의미가 달랐다





"......반대로 말하면 루기스 당신이 저를 거절하는 것은
대성교 성녀에 대한 생각 때문이라는 것이군요
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마티아는 얼굴을 가까이 댄 채
두 손을 강하게 움켜쥐고 내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술 때문일까, 기분이 묘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여하튼 마티아만한 미인에게
이렇게도 열렬히 재촉당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과연 앞으로 다시 올 것인가

내 표정을 봐서인지 그녀는 뺨을 느슨하게 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루기스
당신이 대성교 성녀의 말을 듣고 싶은 것은 이해하겠어요
그렇다면 그때까지는 보류라는 형태로 하고 싶군요
그런 다음에 다시 답을 들어보도록 하죠
만약 그녀의 대답이 바람직하지 못했다면..."





그 앞을 마티아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함축적인 미소를 띄우고, 나의 양손을 어루만지기만 할 뿐

내가 그녀의 말에 대해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당혹감이였다

마티아가 제안한 것은 너무나 불성실하다고나 할까

나는 그것을 입 밖에 꺼내지는 않은 채
그저 눈을 부릅 뜨기만 했다

몇 초의 순간적인 침묵 뒤 마티아가 내게서 얼굴을 떼며 말했다




"루기스, 제가 그렇게도 싫나요?"






그건 비겁해
비겁해도 정도가 있지.




"아... 알았어, 그러니까 이제 용서해 줘"


"좋아요. 기대할게요"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나에게 마티아는 멋진 미소를 띠고 있었다
사랑스럽다기보다 아름답다고 그렇게 말해버릴 정도였다
그녀는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미소를 띠고 있었으니 말이다





 ◇◆◇◆





사물은 언제나 단순하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 자신이다

마티아는 달콤한 술을 기울이는
루기스에게 시선을 보내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표정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느슨해진 뺨은 억제할 수 없었다

분명 지금의 나는 성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예리함이 빠진 표정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이 표정을 아는 사람은 루기스뿐이고
그라면 보여줘도 문제없다
게다가 지금은 기쁜 마음으로 가득했다

가슴 깊은 곳이 따뜻함으로 넘쳐나면서 
짜릿한 저림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마티아 역시 루기스가 여성관계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다

아직 그 인간상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을 때
마땅한 여자를 앞으로 문장교에
묶어 버리려 할 때도 잘 되지 않았다

그 이유도, 그리고 대처방법도 진실만 알면 단순했다



말하자면 루기스는 영혼을 알류에노라는 마녀에게 지배당하고 있다
그 마수에 얽혀 버린 것이었다

그녀와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마음이 깊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신앙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공순하게 하는 일은 마티아에게 있어서 일상

뿌리를 흔들어 의심을 갖게 하고 편리한 길로 유도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생각한 결과 그렇게 되었다고, 확신시키는 것이었다

마티아는 루기스와 술잔을 기울이며 사고를 민첩하게 했다



우선 정보의 제한이다
루기스에게 전달되는 마녀 알류에노의 정보를 모두 감시하에 둔다
이는 비교적 간단한 반면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그리고 문장교와 대성교는 서로 적대적이다

어쩌면 불행이 닥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지



성녀의 방침은 정해졌다
이제 세계는 둘로 갈라진다
하지만 마티아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따뜻한 표정을 지은 채 루기스를 쳐다봤다

아아, 나의 사랑스러운 사람
나는 결코 지지 않을 것이야....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면, 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왕관이요, 그리고 루기스는 그런 나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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