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39화 - 뜨거운 용 - 본문
그 날 피에르트 라 볼고그라드가 시달리고 있던 것은
드물게도 연인의 일이 아니고, 심장의 비정상적인 뜨거움이었다
그것은 인생에서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강하게 맥박이 뛰고, 고동도 빠른 것이였다
평상시 이 심장은 존재하고 있어도
이렇게 강하게 존재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였다
귀를 기울여야, 조용한 맥박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것이였다
하지만 피에르트는 용의 심장이 된 날부터
가슴이 연주하는 색색의 불협화음을 계속 느끼고 있었다
심장만이 강렬하게 존재를 주장하는 나머지
몸이 뭔가 부조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라
피에르트는 자신의 몸에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아, 그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목덜미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직도 죽음의 눈발이 날리고, 뺨엔 찬바람이 오고가고 있었으나
피에르트만이 온몸에서 발하는 열이 느껴졌다
날로 늘어가는 이 열량은
갈라이스 왕국 왕도로 돌아가도 기세를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대로 심장이 불을 뿜어
다 타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계속 누워 있을 수도 없는 노릇
마법사 된 자가 신체의 이상 하나 제어할 수 없다니 망신이다
그런 긍지와도 같은 감정만이 피에르트를 북돋우고 있었다
게다가 열의 정체는 판명됐다
일시적이라지만 피에르트는
대마 브릴리간트라는 껍질에 마력을 실어
나르는 순환기가 되고 있었다
용의 마력
그것은 인간이나, 마수 마족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순정의 마
피에르트는 온몸에서 황홀한 마성을 뒤집어썼던 것이였다
지금도 몸은 그 감촉을 기억하고 있다
심장은 용의 마력으로 뒤덮여 있었다
적어도 그곳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확실한 직감이 있었다
몸이 이상한 열을 토해내는 것은
반드시 그 심장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용의 마성을 가져오는 심장에 적합하며
적합한 껍데기가 되기 위해 온몸은 엄청난 마력을 발하고 었다
술식에 의하지 않은 마력의 발산이 그대로 열이 되어
피에르트의 뇌를 포함한 몸을 녹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놀라운 변화를 이루는 것은
피에르트 그녀 혼자 뿐만이 아니였다
그녀가 지금 휘청거리는 걸음걸이로 찾고 있는 루기스도 그중 하나였다
원수라는 역할을 어깨에 짊어진 그날부터
아니, 헤르트 스탠리의 이름을 들은 그 때부터
그의 눈에는 황금밖에 비치지 않았다
그는 그의 밑에 다다르기 위해
하루 종일 전역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
피에르트에게는 그것이 참을 수 없었다.
그녀도 헤르트 스탠리라는 황금의 존재는 알고 있다
그의 이름을 듣고 생각하는 바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루기스의 그것은 이상했다
마치 애증을 온몸에서 쏟아내는 것 같기도 했다
피에르트는 질투까지 느꼈다
심장 이상으로 그 감정이 뜨거웠다
모든 마음을 자기에게 향하게 해주면 좋을 텐데
사랑이든 증오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나는 받아들일 것이다
피에르트는 열이 오를수록 사고가 가속화되는 것을 깨달았다
가속된 사고가 쓸데없이
루기스에 대한 모정을 참을 수 없는 지평에까지 몰고 갔다
지금의 피에르트는 설령 그의 손으로 목을 조르고도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잘도 그런 모습으로 나돌아다니고 있구나
네놈, 지나친 행동은 언제나 무모한 법이다"
넓은 담화실 입구에서 카리아는 피아라트를 맞아들였다
"영원히 혼자 있는 것보단 낫지"
피에르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역시 이곳이구나 싶었다
카리아가 있다는 것은
거기에 루기스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 순서가 반대인가
루기스가 있으면 거기에 카리아가 부속되는 것이였다
물론 피에르트도 비슷한 취급이였지만 말이다
"대성당이 그렇게까지 할까?
그저 구경만 하고 있을 것 같은데"
과연 루기스는 거기 있었다
보기 드물게 군복이 아닌 사복으로 갈아입으며
담화실 한복판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루기스에게 여왕이 부여한 저택의 담화실은
이제 일종의 회의실로 변해 있었다.
방은 사람이 십여 명 들어가도 여유로웠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소파와 탁자도 잘 갖춰져 있었다
밀담은 못해도 모여서 얘기하기에 적당한 장소
요즘 이 방이 루기스
그리고 그의 파벌의 인간들이 말을 주고 받기 위한
만남의 장소가 되고 있었다
카리아나 엘디스는 말할 것도 없고
용병대장 베스타리누 게루아도 곁을 지켰고
지금은 얼굴을 보이지 않지만 브루더나 안도 곧잘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금 루기스가 정면으로 시선을 맞추고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그의 스승인 리처드였다
오른팔을 잃고 이제 왕년의 힘을 잃었다고 해도
아직 그 눈동자에서는 생생한 빛이 엿보이고 있었다
"올 거야, 만약에 네가 군을 이끌고 제브릴리스에 대항한다며 북진해 봐
놈들은 틀림없이 여기로 쳐들어 올 것이야
선왕도 교황도 전쟁에 대해 잘 아는 인간이 아니야
호국관 블러켄베리도 섣불리 참견할 수 없는 나름이고"
리처드는 눈앞이 아닌 먼 곳을 응시했다
그는 노인들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눈동자가 아닌
이리저리 사고를 움직이게 하는 눈동자를 띠고 있었다
"그 녀석이 아무리 전쟁에서 능숙하다 하더라도
지휘 뿐이라면 지금도 그 녀석에겐 지지 않아
단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1개 군의 능력을 낸다는 거지
아무튼 발레리 그 녀석... 너도 매장감옥에서도 보았지?"
"그래, 봤어
순간 사람이 아닌 줄 알았지 뭐야"
"그리고 대성당 놈들도 천하태평이야
네가 마인이니 대마니 하는 것을 계속 죽인 탓이야
대성당은 자신들이야말로 인류의 구원자로 말하고 있으니
만회의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이야"
요컨대 이런 것이군, 하고 루기스는 스승의 말을 받아냈다
"이대로 왕도에 붙어있으면, 대마 제브릴리스는 계속 전진
비록 이긴다하더라도, 영토가 대부분 침식당해 멸망
그렇다고 앞으로 진군했다간, 대성당이 그 틈을 타 쳐들어 온다...?"
"그렇습니다, 원수 각하
부디 훌륭한 지휘를 하시길 기대하겠습니다"
비웃듯 루기스에게 말한 사람은 리처드 부관 네이마르였다
리처드와의 관계성으로만 본다면 루기스와 남매인 제자 사이일 텐데
그녀는 도무지 불복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원래는 제브릴리스를 어떻게 할 거냐는 거였는데 말야"
열에 휘청거리는 피에르트가
기스에게 말을 건 것은 마침 화제가 하나 끝난 때였다
그녀는 사양할 게 없다는 듯 루기스 옆에 주저앉았다
"피에르트, 너 열 때문에 쉬라고 했을텐데"
"맘대로 침실에서 사라진 주제에, 누가 더 나쁠까?"
순간 표정이 많이 일그러졌지만
잠시 침묵한 뒤 루기스는 피에르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검은 눈이 엄청난 압박감을 띠고 있었으니 말이다
"뭐 피에르트의 말대로
우선은 제브릴리스에 관해서야
수법을 쓰지 않으면, 죽음 뿐일테니까"
"수법을 쓴다고요? 자세히 여쭤보고 싶군요"
담배를 입술에 문 루기스를 위협하듯 네이마르가 말했다
아무래도 스승이 염려하는 것이
다른 제자뿐인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제브릴리스는 움직이는 요새
하늘을 찌를 정도의 거대함이 있어
군대가 상대할 만한 존재가 아니야
자연재해 그 자체일 것이야
차라리 그냥 재해였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하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저 요새거수는 지금 이때도 갈라이스트 왕국을 향해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
대지와, 인간과, 마를 탐하면서 말이다
"용을 쓸 거야
재해의 상대로 재해를 쓸 수 밖에
줄거리는 이미 구상되어 있어
할아범, 최전방으로 나갈 기운은 남아 있어?
아니면 이미 은퇴할 때 인가?"
루기스는 휘청거리는 피에르트를 받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의 눈동자는 빛을 발하며 노장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하지마, 뒤에 틀어박히는 것은
죽은 후의 호사를 위한 거야"
리처드는 비웃듯이 말했다
제자의 것을 능가할 만큼
그 눈동자에는 형형한 색채가 깃들어 있었다
야심도, 의지도, 무엇 하나 시들해 있지는 않았다
그에게 전성기란 언제나 지금 이때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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