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51화 - 하지만 이 세계는 - 본문
만약 갈라이스트 왕도 아르셰의 현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낸다면 한 국가가 망해가는 정경이
갖가지 색상으로 그려질 것이다
구왕국의 군세는 광신에 물들면서도 정연하게 왕도를 포위했다
하지만 왕도세력도 이에 굴하지 않고, 맞서고 있었다
그들을 고무하는 것은
새로운 왕국에 대한 충성과 영웅의 불패 신화뿐
물자는 부족하지 않았지만 지칠 줄 모르고
쳐들어오는 군세는 정신을 강렬히 내동댕이치게 했다
그렇지 않아도 방어전이라는 것은 마음과의 전쟁이니 말이다
말하자면 돌격은 병사들에게 편했다
소리를 지르고 무기를 휘두를 뿐
참을 필요는 없고 두려움도 사라지게 해주는 격이였다
하지만 방어를 하게 되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를
이빨로 깨물면서 의무를 다해야 했다
이웃 사람의 머리가 화살을 맞고 뚫리는 가운데
가만히 성벽 안에 처박히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 없었다
더욱 그들의 정신을 옥죄는 것은
적이 가진 지원군의 존재였다
동쪽에서는 자유도시 국가군
반란 세력을 정리해 구왕국에 기여한 군세가
서쪽에서는 서방국가연합 로어의 군세가
군화를 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왕국의 대부분에 흩어져 있는 신왕국에
아직도 반항적인 귀족들이 그들과 보조를 맞추었다면
이제 왕도만을 남겨둔 신왕국이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일은 상상하기 쉬웠다
"모두! 멈추지 마라!"
그러나
동쪽에서 오는 군세는
군이라고 호칭하기가 부적합한 것 같았다
일종의 거친 통제가 있지만
실상은 중무장한 도적단이라고나 할까
안에는 저급 마수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이 주위에 인간을 두어도 날뛰지 않는 것은
두목인 킬 바자로프의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말에 걸터앉으며 사나운 두눈을 뜨는 모습은
인간의 형상을 취하면서도 이제 그가 인간이 아님을 알리고 있었다
이제 그 눈동자에는 인류라는 종에 대한 증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썩어도 왕도다! 거기만 차지하면 뭐든지 해도 좋다!"
킬은 몇 번이고 소리를 질러 군사를 재촉했다
1초라도 빨리 왕도에 도착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들 대부분에 있어서 목적은 모두 비슷했다
흔히 있는 싸움터의 명분은
자기 욕망 때문에 사람이나 돈을 갖는 것이였다
부귀의 상징이라 할 왕도를 갖게 된다면
재산은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통일된 목적을 가진 이 도적단은 강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그렇게 궁전에서 영웅들의 싸움이 펼쳐지는 동시에
왕도 내외에서는 인간들의 싸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도적단에서 왕도까지의 거리는 단 하루
하지만 두목인 킬이 크게 혀를 차며 꺼림칙하게 말했다
"따라잡힌건가!"
그들이 경이로운 속도로 밀고 나가 강행군을 감행한 것은
그저 약탈 때문만은 아니였다
약탈이라면, 근처 조그만 마을로도 가능했을 터인데
그것을 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
그들도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였다
건조한 공기 속에서 마수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내가 너희들에게 명령하니!
제정신은 광기로, 광기는 제정신으로!
죽고 다시 태어나, 180마리의 괴물이 되어라!
이 산적 놈들... 내가 놓칠 것 같아?"
볼버트 군 부장
에일린 레이 라키아도르의 마력이 주변 일대를 뒤덮었다
그녀에 호응한 듯 마수병들이 포효를 지르며 일제히 달려나갔다
그것은 대충 돌격하는 것이 아닌, 훈련된 군으로서의 움직임이였다
앞선 마성전역으로 수는 줄어도
레이 라키아도르의 감염 마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냥 산적도 아니지
저들은 우리 나라를 엉망으로 휘젓고 다닌 역적이야
다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나라 망신일지도?"
볼버트군 부장 하인드 뷰세는
손가락에 담은 마탄을 전장에 흩뜨렸다
피할 수 없는 마탄은 일체의 자비도 없이
도적들의 머릿통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다른 볼버트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숫자는 수찬, 전성기의 4만에 비하면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그 강인함은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적이 만을 넘는다지만
산적떼에 달려들기엔 충분한 수였다
"그래, 맞는 말이다"
하인드의 말에 그는 탁 하고 천둥을 치며 대답했다
용사의 천둥과는 또 다른 마법의 번개가
마법 기구인 두 팔에서 튕겨나왔다.
지금까지는 어딘지 여유를 보이던 킬도
그의 모습을 보고, 눈동자의 모습을 바꾸었다
"잘도 우리 마을들을 잘 불태웠군...
아무튼 이제 다 따라잡았으니..."
마도장군 마스티기오스 라 볼고그라드는 어깨를 휘둘렀다
주위는 호흡을 잃은 듯 고요해지면서
오직 번개가 터지는 소리만 나타나고 있었다
"입 닥쳐, 마스티기오스!
젠장할! 그 때 바로 죽였어야 했는데!"
"누군가 말하지 않았나?
누구나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고
지금 니 차례가 온 것 같구나, 이 악당아..."
마스티기오스는 그것만을 말하고, 치켜든 팔을 내리쳤다
일찍이 도시의 대문조차 날려버린 천둥소리의 포효
포학의 송곳니가 도적과 마수의 무리에게 날려진다면
어떻게 될까 등 불을 보듯 뻔했다
용으로 변한 번개가, 수많은 생명을 삼키고 턱을 열었다
이제는 여기는 전쟁터라고조차 말하기 어려울 지경이였다
"각하, 적군을 어서 후퇴시키게 합시다
결국은 오합지졸의 군세, 쉬운 일일 것입니다"
에일린의 건의 의도는 뻔했다
이 자리에서 적의 원군을 쳐부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위기에 처해 있을 왕도에 대한 조력을 우선하자는 것
전술안보다는 전략적 관점을 더 잘 아는 그녀다운 말이었다
하지만 마스티기오스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기서 적군을 궤멸시키겠다
왕도에는 일리저드의 군세도 향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역할은 그들의 일체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마스티기오스의 말은 사실이지만
물론 그것만은 아니었다
국가 차원에서 여기서 이들을 궤멸시켜야 할 이유가 있었다
두목인 킬은 물론 그 휘하의 마수와 인간들도
과거 볼버트 왕조를 산산조각 내고 다니며
영지의 대부분을 초토로 삼았던 원수들이였다
지금 볼버트 왕조는 부흥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 아직 마성 전역의 상처는 컸다
무엇보다 한번 볼버트군이 마인에 의해 와해된 것은
국가가 정신적 지주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볼버트 왕조는
어떤 형태로든 승리를 외부에서 수입해야만 했다
그것도 일찍이 국가를 유린한 원수를 죽인다는 것 말이다
"게다가 말이야, 에일린
왕도에는 루기스님이 같은 영웅들도 있고 말이야
아, 무엇보다 내 딸도 있었지"
마스티기오스의 뺨이 치켜올라갔다
그 웃는 얼굴은 이 지원군이 국가의 의도만은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뜻밖의 마도 장군의 말에 에일린뿐 아니라 하인드까지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딸에 대해 말하는 것은 드문 일이기 때문이였다
"믿고 계시는 군요, 피에르트님을..."
"믿고 말고"
마스티기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모습은 아버지로서의 용모와
마도 장군의 색채를 혼합하고 있었다
"나 같은 건 훌쩍 뛰어넘었으니까 말이야
더 이상 내 딸 따위라고 부를 순 없겠지
피에르트는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했으니까"
◇◆◇◆
머리가 아팠고, 뭔가 구역질이 나는 기분이였다
나는 이제서야 뭔가 꿈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인가가 나를 삼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피에르트는 일어서야 했고
의연한 처신을 지어야 했다
마법서, 변혁자로서-세계를 구원하는 사람으로서...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시절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나
마법사로서 실패였던 나
재능을 원망하고 오열하기만 하던 그 시절로 말이다
싫어, 싫어, 싫어
돌아가고 싶지 않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
내 얘기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조소와 모멸만이 자기 주위를 맴돌 뿐이였다
나에게는 마법밖에... 그래, 이것 밖에 없어
그러니까
"네가 죽는다고 해서, 내 알 바가 아니야
마법을 모르는 인간이란 무가치한 법이니까"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어, 안 했단 말야
기억에 없는 기억들과 낯선 과거의 영상들이
피에르트의 영혼을 쪼아먹고 았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네가 싫거든"
싫어, 그런 말 하지 말아줘
피에르트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제정신인 것인가? 아니면 망가진 것인가?
오직 가슴속에 부풀어오르는 분노와
울적한 감정만이 그녀의 시야를 뒤덮고 있었다
너희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았어
내가 이렇게 될 때까지 너희들은 뭘 했지?
네가 가치를 가질 때까지
인간으로 봐주지 않았고 상대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재주가 있는 것 같으니 인정해 주려는 거야?
웃기지 마
내가 망가진 건 너희들 때문이야
이제 와서 무슨 호의를 주는 거야?
내 마법만 보고 다가오는 패거리 따위는 믿을 수가 없어
그 남자도 그렇다
평범한 주제에
황금이 아니라 구리나 쇳가루에 불과한 주제에
왜 당연하다는 얼굴로 거기 있는거지?
어째서 나는 인정받지 못했는데
이 녀석은 평범한 채로 인정받고 있는 거야
피에르트는 그런 짜증을 떠올렸다
이 남자도 결국은 남의 재능에 매달려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빛에 눈이 태워져 포기해 버리고 있을 뿐
그렇기 때문에, 실실 웃을 수 있는 것일 것이다
그래,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그는 스스로 불에 휩싸인 것일까
그렇다면 어째서 그는 내 손을 잡아 준 것인가
분명 나를 싫어할 텐데 말이다
아니야, 아니야
피에르트는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야
나는 그냥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었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았어
피에르트는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검은 눈동자를 깜빡였다
아직도 자신이 서 있는 것인지, 살아 있는 것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태연한 얼굴로 내 손을 잡으며 말했고
순간, 피에르트의 검은 동공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이, 공범
멍 때리지 말고, 이기러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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