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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59화 - 잊혀지는 이야기 - 본문
왕도 아르셰의 중심지
빛의 기둥은 굉음을 일으키며 마력의 폭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광란은 오직 한 인간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였다
하지만 광란은 끝나지 않았고
그 인간이 죽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위엄을 갖추고 진좌하는 빛의 기둥을 향해
인간왕 메디크가 포효을 내질렀다
갑옷도 입지 않고 창을 휘두르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그의 시절을 연상케 하는 듯 했다
메디크는 언제나 누구보다 앞에 있었고
누구보다 먼저 상처를 입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왕의 대가라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가 휘두르는 창의 일격은 정령보다 더 빠르게
거인보다 더 호쾌하게, 용보다 더 날카롭게 빛을 뚫었다
고오오오오오오
"울지 말라고
난 산 자들을을 거느려야 해서 말이야"
메디크는 빛의 기둥을 향해 말하면서, 스스로를 비웃었다
산 자를 거느리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였지만
생전에 의무를 다했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확실히 인간왕 메디크는
서방에서 최초의 인간국가를 만들었다
인간은 숨을 쉬며 살아가는 자유를 얻어냈고
메디크와 마녀 바로누스는 인간의 존엄성을 쟁취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전하는 신화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생전의 메디크는
국가를 이룩한 자부심보다
마음 속으로 강하게 품은 바가 있었으니
나는 과연 시대를 이을 수 있을까
메디크는 결코 자신을 특별시하지 않았다
인류에게 불가능이란 없으며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 말이다
그 신념은 누구보다도 컸다
하지만 그의 신념에 매달리는 사람은 있어도
줄을 서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직도 인류가 너무 연약하고 마성이 강대했던 시대
메디크가 답파하고 바로누스가 이어진 길에서
너무 많은 인간이 죽어갔다
메디크는 인류를 믿었다
하지만 틀림없이 공포는 있었다
내가 만든 인류의 국가를
나는 누군가에게 계승할 수 있을까?
내가 죽은 후에도 그들은 인류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한번 죽고 부활한 지금 이 순간
메디크의 가슴속에는 한 점의 두려움도 없었다
인간왕은 순간순간 도시를 바라보았다
성벽에서 창을 휘두르는 병사들
곳곳에 건물들이 가득한 거리
인간은 이미 마성과 싸우기 위한 힘을 손에 넣은 것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전처럼 계속 싸우는 사람이 있었다
포기하지 않는 자들도...
인간은 더 이상 단 한 명의 왕이
이끌어야 하는 취약한 종족이 아니었다
메디크의 비호는 필요 없을 것이다
그의 뜻을 받들만한 자들이 충분하니 말이다
훌륭하다
이제 죽음은 두렵지 않다
만약 인류가 망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자기 손으로 망할 때, 뿐일 것이다
메디크는 빛에 기둥에
창을 꽂은 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기둥에서 나오는 마력의 진동이
그의 육체를 계속 도려내고 있었고
살은 파헤쳐지며, 피가 계속 튀어나가는 상황이였다
하지만 상관없어, 기분이 나쁘지도 않군
"어이, 이제 그만 끝내보자고
너도 나도 너무 시간을 끌고 앉아있었어"
옛 신을 상징하는 기둥을 향해 메디크가 말했다
그 눈동자에는 이제 원수를 바라보는
증오가 아니라 향수마저 깃들어 있었다
"너무 미련을 갖지는 말아라
너희들이 신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제 천 년도 전의 일이야
저 아가씨에게 멸망당했다면
순순히 퇴장해야지 않겠나?
무대라는 것은 산 자만 오를 수 있는 법이야"
메디크는 두 손에 힘을 주고
얼굴에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당당하고도 무거운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너는 이제 그 아가씨의 힘 그 자체인거냐?
그렇다면 어서 사라져 줘야겠군"
으드득으드득하며 창이 소리를 높여 갔다
빛에 기둥에 의한 소리가 아니라
이젠 창 자체가 메디크의 강압에 짓눌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조절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메디크는 웃었다
이제 그 모습은 인간왕이 아니라
그저 무뢰배 처럼 보이는 거한이 있었다
"그 아가씨와 결판을 못 낸건 유감이지만..."
메디크는 창에 힘을 더 주었다
그 직후, 주위의 공간이 좁혀지기 시작하더니
숨소리 조차 내지 못할 만큼의 긴박감이 주위를 뒤덮어나갔다
일찍이 세계의 일각을 이룩한 영웅이
자신의 모든 생명을 희생하며, 포효를 내던진 것이였다
"너 만큼은 없애고 가야겠다!"
정령을 죽이고, 거인을 죽이고, 용을 죽인 인간의 왕
유일하게 죽이지 못한 것의 이름은 신
마성을 이 대륙에 낳아
통괄하고 운명마저 움켜쥐고 있던 기계장치의 신들
누군가엔 톱니바퀴라고 불린 자
그렇게 지배와 통괄을 하다
스스로 낳은 괴물에게 죽임을 당한 자들
굉장히 우스웠던 사실이지만
그들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즉, 신 자체도 죽는다는 것
다치고,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는 존재라면
인간이 넘지 못할 리가 없다
인간왕은 인간에게 불가능이란 없다고 믿었다
정령의 빛보다 재빠르고
거인의 힘보다 더 호쾌하게, 용의 광포함보다 더 날카롭게
메디크는 창을 움켜쥐고, 한 발짝을 내디뎠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마지막 힘
재능 있었던 인간이 역경을 딛고
의지와 각오를 다스리고 답파한 끝에
도달한 하나의 경지
만인이 모방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였다
메디크가 생각하는 만인이
자신과 같은 힘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은
반드시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은 그가 원하는 것만큼 평등하지 않았고
그가 원하는 것만큼 누구나 강한 세상은 있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인간왕 메디크라는 존재는
인류에게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일지도 모른다
슬프게도 그의 바람은 무의미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오오오오오오오오
그가 보여 준 이상을 누군가가 꿈꿨기에
그의 신화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생애에 의미는 있었을 것이다
"초월, 인기(人技), 신 살해"
인류인 채 인류를 초월한 왕의
최후의 일격이 빛의 기둥을 관통했다
그것은 그저 일격 같았으나
세계 조차 참획해버릴 것 같은 위력을 담고 있었다
정령과 거인, 그리고 용을 죽인 끝에 당도한 힘
마력이 아닌
인간왕의 영혼을 소비하여 만드는 힘
창은 산산히 부서져갔고
귀청을 찢을 정도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아아아아악"
그것은 빛의 기둥의 비명이였다
목숨이 끊긴 자의 최후의 포효
빛의 기둥이 무너지고 부서지면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몸부림치는 그 모습은 필사적으로 세계에 매달리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메디크에게 그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손가락 끝의 감각만으로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고, 안도했다
그는 자신이 최후에 다다르서야
이번에야말로 역할을 완수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예전처럼 그저 죽기만 하고 끝나지는 않았던 것이다
메디크는 궁전이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이젠 눈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서야... 끝났구나..."
영혼과 몸이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했다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의 신화도 머지않아, 먼 훗날엔 잊혀질지도
인간왕 메디크라는 흔적은 모래알만큼도 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메디크는 지금 처음으로 시대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상한 영혼 뿐인 모습으로
더 살아갈 필요도 없겠지...
이제 다음을 살 수 있는 자들이 있으니까...
모든 것은 그들에게 맡겨보자
"고맙구나"
인간왕 메디크는 사라져가는 몸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왕이라기보단, 그저 온화한 남자가
수면에 잠들면서 하는 말 한 마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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