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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34화 - 번지는 의심과 성녀의 미소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7장 베르페인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34화 - 번지는 의심과 성녀의 미소 -

개성공단 2020. 3. 24. 10:19

베스타리누의 딱딱한 발소리가

영주관 복도에 울러퍼졌다

 

그것은 강철로 덮인 다리가 울리는 소리가

딱딱하다는 소리가 아니였다.

어딘지 모르게 발걸음 자체가

굳어 있는 것 같은 그런 소리였다

 

자기 아버지를 만나는 가는데,

이렇게 까지 발이 무거운 건 처음이였다.

비록 질책을 각오하고 아버지 앞에 갔을 때도

더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을 나였을텐데

 

그런데 지금은 왜?

 

베스타리누는 자신의 가슴에 심어진 꺼림칙함이

그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꺼림칙함의 정체는 한 가지의 질문

 

"브루더, 브루더 게르아의 이름을 생각해봐라"

 

나의 아버지를 헐뜯은 용병의 그 말이 아직도 귀에 선했다.

 

따지고 보면 생각할 수록 말도 안되는 헛소리였다.

분명 원망 끝에 막 뱉어낸 의미없는 소리겠지

나약한 사람은 강한 사람에게

사리에 어긋나는 원망을 품기 일쑤니까

 

그렇지만, 베스타리루는 그 용병을

죽일 맘이 갑자기 들지 않았다.

 

베스타리누의 정신은 강고하면서도 어딘가 뒤틀려버렸다.

이제까지 아버지의 말 대로 행동해왔던 그녀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의심을 품어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손끝에 담으며

아버지가 있는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그녀의 가슴은 평소보다 매우 두근거리고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아버님"

 

방에 들어가자

아버지는 웃음 띤 얼굴로 자신을 맞아들이고,

자신의 행동을 칭찬하고 긍정해주셨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아하니

자신의 불안감도 어디론가 사라진듯 했다.

 

역시 아버지는 자상하다.

백성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영주다

그런 아버지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것인가

 

베스타리누는 평소의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마음에서 의심의 씨앗을 없애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정중하게...

 

"아버지,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베스타리누의 정신은 평형을 되찾고 있었고

자신이 아버지를 의심한 행동은

정말로 어리석은 짓이라며 스스로를 비판하며

앞으로는 이런 쓸데없는 행위를 하지말자 다짐하는 순간

 

"브루더, 브루더 게르아라는 인간을 아십니까"

 

아무래도 좋은 인간이지만 말입니다

...하고 말을 이어나가려 했던

베스타리누의 입술이 갑자기 닫히고 말았다

 

아버지는 지금 평상시의 얼굴을 가장하고 있었다

 

내 말을 듣자마자, 아버지가 취한 행동은

꿈뜰하고 어깨를 움직이며 얼굴을 굳힌 것이였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옆에서 보면, 그저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였다.

 

하지만 베스타리누는 기대하고 있었다

어떤 주저함도 없이, 그런 인간은 모른다며

쾌활하게 대답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영주 모르도가 옛날에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그 때 전해진 말이 귓속에서 앵앵거렸다

 

 

 

 

*

 

 

 

싸구려 여인숙 안에서

진흙으로 달라붙은 구두를 손질하며 입을 열었다

 

"역시 이번에도 너무 무모했었나,

브루더...아, 아니 이젠 브루더가 아닌가?"

 

발을 구르며, 한숨을 내쉬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그의 이름이라고 불렀던 브루더는

알고보니, 사실 녀석의 아버지 이름이였다.

그렇다면 저 녀석에겐 다른 이름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였다.

그럼 이제 브루더라고 부르면 안되는건가?

 

"루기스, 괜찮아, 상관없어

지금의 이름에도 익숙해졌으니까"

 

브루더는 침대에 누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베스타리누와 무모하고 화려한 전투를 벌인

브루더의 몸은 크고 작은 상처가 보였다.

치명적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역시 휴식은 필요했다.

 

나는 문득 눈을 가늘게 떴다

 

브루더라는 이름이 그의 본명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나는 지난 세계에서도 알지 못했었다.

오히려 그런 내색 조차 보지 못했다.

분명, 열심히 감추고 있었던 거겠지

나한테 말할 수 없었던, 이유라도 있었던 걸까

 

물론 과거의 부르더가

나에게 말할 필요도 없는 존재로

단정 지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마음 속으로

정리할 수 없는 생각을 흔들고 있는 와중에

누군가 등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루기스 씨, 당신의 행동은 생각 이상으로 무모했습니다.

진심으로 충분한 반성을 해주셨으면 해요"

 

성녀 마티아의 말에 나도 모르게

등골을 어루만지는 듯한 감촉을 느꼈다.

 

그 목소리엔 험악한 것은 없었고,

오히려 어딘지 다정하고, 나를 우려하는 듯한,

성녀 다운 목소리였다.

동시에, 어딘가 한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고 말고, 너 진짜 막말로

저승사자랑 요단강 건널뻔 했다고"

 

브루더는 베스타리누와 싸운 충격으로

뼈 마디마디에 고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농담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그의 담력은 놀라울 따름이였다.

 

브루더의 한마디 덕인지

강철공주는 말없이 우리 앞에서 사라졌다

아무래도 모르도에게 사실을 확인하러 갔겠지

 

이제 부녀간 문답을 하면서

가슴에 뿌려졌을 씨앗이 싹트기를 바래야 한다.

안된다면, 한번 더 계책을 짜야 하거나 해야겠지

 

"루기스"

 

그렇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며 담배를 꺼내는데,

성녀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방안에 울러펴졌다.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돌아보자

성녀는 나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씹는 담배는 집어치우시고

당신은 저에게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을 깜빡였다

 

성녀에게 할 말이 있을 거라니

도무지 생각해도 그런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와 뭔가 약속이라도 했다는 것인가?

마티아는 대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거지?

 

이 이상 지체하다간

성녀는 독설을 담은 목소리를 

나에게 뿜어낼게 뻔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마티아는 

초조함을 드러내지 않고,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그녀의 말투는 마치 사리를 모르는 아이에게

도리를 가르치는 듯한 그런 말투였다.

 

"루기스, 당신은 저의 말을 무시하고

스스로 위험에 빠지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니까 저한테 사과를 하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방에 울러펴진 그녀의 말에

나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턱을 만지작거렸다.

 

"당신은 저에게 맹세했을 것입니다.

긍지를 가지고 더 이상 위험에 뛰어들지 않겠다고"

 

자..잠깐, 그렇게까지 말한적은 없었다고

뭘 멋대로 생각한거야!?

 

마티아의 말에 긍정의 뜻을 나타낸건 맞지만

딱히 그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였다

어디서부터 해석을 잘못한 것일까?

 

그러나 그 의문을 말할 틈도 없이

마티아의 입술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

 

"그러니까 루기스...

제발 저에게 용서를 빌어주세요....제발"

 

등골이 오싹해졌다

마티아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성녀 다운 자애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동시에

어딘지 나를 몰아붙이는 듯한 울림이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발꿈치를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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