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38화 - 여자들의 향연 - 본문
광택을 머금은 황금 머리카락
의지를 빛내는 눈동자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가
묘한 엄격함을 느끼게 했다
가희의 성녀 알류에노,
베르페인의 영주는 그녀를 그렇게 소개했다
성녀라고 해도 뭔가 세속적인 성격은 아닌 듯 보였다
오히려 그 음색은 어딘가 친근함 마저
느끼게 하는 그런 음색이였다
아무튼 지금 그 그녀가 카리아의 눈 앞에 있었다
그리고 모르도, 피에르트와 함께
이야기에 매우 흥겨워하고 있었다.
분명 그녀의 눈동자에는 친해지기 쉬운
여성 두명이 비치고 있을 테지
하지만 카리아만은 달랐다
알류에노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카리아의 눈동자에는
전혀 다른 것이 비치고 있었다
그것은 저번에 보았던
루기스의 모습...
알류에노의 이름을 고하는 루기스의 얼굴...
그 표정은 이제까지 나한테 보여준 적이 없었던
매우 따뜻함을 띤 그 표정이였다
카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서로 맞물렸다
그날 밤 내가 얼마나 굴욕을 당했던가
가슴에서 쏟아지는 감정의 격류가
몇 번이고 이 몸을 밀어내려고 했던가
아직도 그 감각은 명확하게
카리아의 뇌리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굴욕을 맛보게 한 상대가,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었다.
카리아는 자기 손가락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일단은 참자
지금 여기서 일을 그르치면
모든것이 수포로 돌아가버릴거야
솔직히 사실대로 말하자면
카리아는 알류에노에게 굴욕을 당한 것도,
모멸을 당한 것도 아니였다.
그녀라는 존재가 루기스를 통해서
카리아를 괴롭히고 있었을 뿐이였다.
가슴이 열이나는 듯 끓어올랐다
나의 감정이 흔들리게 한 대가는
반드시 그 남자에게 치르도록 해줄테야
까딱하면 경련할 것 같은 입술을 누르며
카리아는 이어지는 이야기에 가담했다
이때만큼은 멋모르고 미소를 지을 수 있는
피에르트가 너무나 부러웠다
루기스에 대해서 더 알고 있다는 우월감
그리고 이런 일이라면 몰랐어야 한다는
가슴을 씹어버리는 점착질의 감정...
그런 것이 천천히 섞이면서
카리아의 가슴을 일그러뜨려 갔다
"그래서 두 분께서는, 어떤 일로 오신겁니까?"
대화의 물결이 오가는 가운데
문득, 모르도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왔다
카리아는 겨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손님을 대접하는데로 선뜻 나서지 않는 완곡함이
바로 영주귀족들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이 모르도라는 영주,,, 벼락출세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본인의 노력인지 자질인지는 몰라도,
귀족 본연의 자세의 모습은 잘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피에르트는 카리아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고
카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 우리가 베르페인에 온 것은 단 하나
대죄인 루기스의 그림자를 뒤쫓아서 온것입니다."
카리아는 그 말을 내뱉으며
자연스럽게 알류에노의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엄숙한 모습을 유지하던 알류에노는
지금까지 무너질 기미조차 없었던
표정을 잠깐이지만, 흔들리고 말았다.
역시 네놈인가?
루기스가 말하는 사람은...
피에르트가 카리아의 말을 잇듯이 입을 열었다
"저는 대성교의 이름으로
그 짐승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무력한 나머지,
그 짐승의 꼬리 조차 잡을 수 없습니다"
피에르트는 희극의 배우가 된 것 마냥
모르도에게 눈을 부릅뜨며 연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방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엔 매우 효과적이였다.
"...그러므로 모르도 각하에게
조력을 부탁하고 싶어서
염치 없지만 여기에 온 것입니다."
카리아는 그렇게 말을 곁들이며
알류에노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조금 전, 한 순간의 동요 이후,
동작이나 표정에 일절 차이는 없었다
마치 당연하나는 듯이
피에르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 듯 하기까지 했다
"성녀 알류에노,
당신 또한 저희랑 마찬가지이겠지요?
대성교도로서 그런 큰 죄인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카리아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고,
동의 말고는 없을 질문을 던졌다
아까부터 알류에노는 약간의 반응 외에는
딱히 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루기스의 사랑은 짝사랑 일 수도 있기에,
그렇다면 됬다고 카리아는 생각했다
짝사랑에 불과하다면
이 베르페인에서 아예 단절을 시키는 게
루기스 너에게도 그 편이 제일 나을거야
어짜피 이루지 못할 사랑이라면
큰 비극으로 잊어버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뭐, 비극이라해도, 걱정할건 없다
그 비극의 끝에서 내가 녀석을 안아줄테니
네놈이 과거의 생각을 잊어버릴때까지
내가 위로하고 안아주도록 하겠다
모르도는 카리아의 말에 대답하기 위해
두툼한 입술을 열었다
"제가 어찌 성녀님을 앞에 두고
감히 거절을 내뱉을 수 있겠습니까?
문장교 놈들은 제가 직접 군대를 몰고가서
그놈들의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습니다!!"
그렇게 모르도는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피에르트와 카리아는 속으로 불쾌감을 느꼈지만
정체를 숨기고 있는 이상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카리아는 모르도에게서 시선을 피하며
알류에노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자, 네놈도 같은 마음이겠지. 어서 동의해버려
알류에노의 동작, 표정, 벽안에는
아까와 아무런 차이는 없었다.
그리고 당연한 듯이,
성녀다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렇고요 말고요
그런 사람들을 어찌 가만 둘 수 있겠습니까"
알류에노는 품위 있는 미소를 유지했고,
카리아 역시 얼굴에 선을 그은 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 속에서
정체모를 무언가가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아, 네놈도 마찬가지인가
카리아는 가슴 깊은 곳의 무언가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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