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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75화 - 이 몸이 짊어지는 것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7장 베르페인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75화 - 이 몸이 짊어지는 것 -

개성공단 2020. 4. 9. 21:13

머리 깊은 곳에 묘한 저림이 느껴지고 있었다

심장이 강하게 뛰고, 온몸이 울리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렸고

신체의 감각 자체가, 왠지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은

그런 감촉이 느껴졌다

 

"저것은 신이 내리신 짐승, 인간이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녀들이 이기려고 하는 것은 모두 쓸데없는 노력이며,

정말 필요한 것은 신에게 빌고, 구제를 바라는 것 뿐입니다"

 

알류에노의 비웃는 듯한 말투가 나의 귀를 매끈하게 귓속으로 들어왔다

나의 심장은 계속해서 뛰고 있었고, 어딘가 위화감이 있어 보였다

 

알류에노의 말, 그것은 어딘가 맞는 말일 수도 있었다

 

여하튼 괴물, 육신의 짐승은

분명히 다른 생물과는 구별되는 존재였다

신의 소행이라고 한다면, 어떤 형태로는 납득할 수 있었고

혹은 악마의 악의 그 자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었기에

자연에서 나올 수 잇는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황금색 머리카락이 내 시야의 가장자리를 가로질렀다

 

"루기스, 저는 말입니다

당신이 여기로 올 것임을 모두 알고 있었어요

그러므로 신께서 이 곳으로 인도하셨고

그리고 당신이 올때까지 여기서 기다렸습니다"

 

목소리가 귀로 빠져나가자

피부와 손끝... 아니, 온몸이 너무 차갑게 느껴졌다

내쉬는 숨과 들이쉬는 숨 모두 몸에서 열을 빼앗아 가버렸더

그럴때마다 나의 머리속은 하얗게 물들었고

생각 따위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단지 알류에노의 말 만이, 따뜻함을 전해주고 있었다

 

"루기스, 들어보세요

당신이 영웅이라고 흠모하던 존재도

신의 손 앞에서는 순순히 굴러갈 수 밖에 없습니다"

 

눈 아래에서 카리아의 은검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은검이 아무리 살덩이르 쪼개어 피를 분출시켜도

순식간에 상처에 살이 다시 불어나서 상처를 막았다

마치 은발을 흔들며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카리아를 비웃는 것 같았다

 

"사람은 이것을, 신이 그은 운명이라고 불러

그리고 운명은 결코 거스를 수 없는 법이야

그래, 영웅도, 용자도 아닌, 평범한 당신이라면 더 잘 알겠지"

 

몸이 마치 얼음 그 자체라도 된 것처럼 차가워졌다

정말 얼어서 동사 해버릴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였다

 

"있잖아 루기스, 이제 됐어 그만 포기해

아니, 오히려 너는 잘해줬어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아, 상처 받지 않아도 돼"

 

등 뒤에서 뻗은 손이 목에 감기고

그녀는 나의 귀에 대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할까, 달콤하고 달콤한 유혹이였다

몸도, 심장도, 내장의 모든 것이 녹아 내릴 것 같은 달콤함...

 

짙은 흰색이 겹쳐,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린 머릿속에

문득 몇가지의 광경이 떠올랐다

 

그것은 틀림없는 과거의 회상이였다

과거의 굴욕에 젖은 여로에서 성벽도시 갈루아마리아,

공중적원 가자리아, 그리고 이곳 용병도시 베르페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회상이 천천히 눈동자 속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왠지, 내가 이룬 것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는 궤적이

그 근처에 흩어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잘 해냈구나

 

과연 확실히, 이 몸에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면, 

바로 이것은 빛나고 엄청난 사실이였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생각하면,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은

아아, 정말로 즐겁고 멋진 나날이였어

 

뺨을 내리는 찬바람에, 나도 모르게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알류에노의 희고 고운 피부가 바로 옆에 보이고 있었다

 

정말 좋은 꿈이였어

 

용서 받을 거야

그녀의 손을 잡는 것은 누구에게도 비난 받지 않을 거야

과연 누가 그 행위를 책망하겠는가

모든 고난을 내던지고, 그것들을 하룻밤의 꿈으로

흘려보내고 무릎을 꿇는 행위를, 그 누가...


뒤에서, 무언가를 노래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괴물과 맞서는

카리아의 은검이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말을 고르며, 뒤로 말을 던졌다

 

"미안해, 신이니 운명이니 너무 고상해서

그런 종류의 이야긴 나에게 와닿지 않는 것 같아"

 

눈 앞의 하얀 팔이 꿈틀하더니 부자연스럽게 튀었다

뺨을 세게 때리는 바람이 여전히 차갑게 느껴졌고

이젠 아픔 마저 느낄 정도 였다

 

그래 용서받고 말고, 

모든 고난을 체념끝에 내팽개치고 무릎 꿇고 잠드는 것은

누구에게나 허용될 권리다,

아마 예전의 나였으면 반드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와서 그럴 권리는 주어질리 없다

만인이 용서하더라도, 내 자신이 용서하겠는가

 

태양과 같은 영웅의 한쪽 눈을 도려내고,

엘프 왕의 목숨을 없애고, 카리아의 목덜미까지

검을 들이대었다

 

'너 안의 시궁쥐를 목 졸라 죽여라'

 

'그 검을 냅다 던져보거라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이제 네놈은 평범한 사람도 조약돌도 아니다'

 

지금에 와선 이 몸은 결코 자유의 몸이 아니였다

포기하는 것도, 무릎을 꿇는 것도, 스스로를 얕보는 것도

모두 그들에 대한 모멸일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며, 동경을 가슴에 품는 그들의 존재에

진흙을 칠하게 되는 격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일을 이제와서 어떻게 하겠는가

그런 일을 어떻게 가슴이 허용할리 있겠는가

 

"루기스... 그런 말 꺼내지마... 내 손을 잡아주기로 했잖아?"

 

그 목소리가 귀에 들릴 때마다, 나의 마음은 삐뚤빼뚤 기울어졌다

정신이 균형을 잃을 것 같았기에, 될 수 만 있다면 지금 바로 뒤를 되돌아보고

그녀의 몸을 안아버리고 싶다고도 생각되었다

모순되는 것 같지만, 확실히 그 마음도 이 가슴속에 존재하고 잇었다

 

하지만 말이다

 

"아, 용서해달라고, 내가 반한 여자는 말이야

너만큼 싼 말을 내뱉는 사람은 아니였어

뭐, 좋은 꿈을 꾸긴 했지만 말야"

 

목 언저리에서 햐얀 팔을 떼어내며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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