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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76화 - 가려내는 자와 받는 자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7장 베르페인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76화 - 가려내는 자와 받는 자 -

개성공단 2020. 4. 9. 21:58

아아, 이 감정을 뭐라고 부를까

뭐라고 이름 지어야 할까

 

그 모습을 이 눈동자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지극히 행운이였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던 것은 천하의 행복이였기에

그래서야말로 지금 이 가슴은 깃발을 휘날린 것처럼

모든 것을 토해낼 수 있었다

 

"아, 용서해줘, 내가 반한 여자는 말이야

너 만큼 싼 말은 내뱉는 사람은 아니였어"

 

나의 호흡은 이제 단순한 한숨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열을 가지고 있었다

좀 전에는 냉기밖에 내뱉지 않았는데 말이다.

 

흐릿했을 시야가, 놀랄 정도로 맑아 보였다

이렇게 감정을 태웠던 적이 있었던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말을 걸고 있는 것은, 알류에노가 아니다

알류에노는 무엇보다도 나의 노력이 헛수고라는

그런 소리를 절대 내뱉지 않는 인간이였다

그것은 고아원에서 지내던 시절에도, 과거의 여행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몸을 돌려서 다시 그 모습을 눈동자로 파악했다

옷차림과 모습은 알류에노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영혼이라고 할까, 알류에노를 형성하고 있던 하나가

눈 앞의 존재에서 빠지고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알류에노의 모습을 한 여자가 입술을 열었다

 

"닥쳐, 아까까진 싫다고 할 정도로 웃고 있었던 주제에"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졌다

 

"겁쟁이, 닥치라고 했잖아

남의 앞에서 함부로 말도 못하려고 한 주제에"

 

그건 조금 전까지 귓가에 맴돌던 따뜻한 목소리가 아닌

그냥 감정을 입술에서 뱉는 것 같은, 단어의 나열 같았다"

 

"얄미울 정도로 닮긴 했군

오우후르가 그 손을 잡아준 것도 수긍이 가는 군"

 

그리고 알류에노의 목소리도 아닌

전혀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 였다

 

그리고 오우후르?

확실히 문장교의 신인가 뭔가 그런 이름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어째서 그것이 지금 여기서 나오는 것인가

도대체 이게 어떤 상황인거지?

 

"무슨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

아, 이 몸 말이야? 내가 잠시 빌린 거야"

 

몸을 빌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무슨 까닭인지 모르는 데에도 정도가 있지

 

나의 머리는 이 상황을 해석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 같았고

나의 손은 자연스레 보검에 손을 갖다대고 있었다

 

"뭐야, 그러지말라고,그런 칼에 손을 갖다 대다니

난 겁쟁이니까 그런 것을 차마 두고 볼 순 없다고"

 

눈 앞의 인간, 알류에노의 모습을 한 무엇인가는

실감이라고는 담겨져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과연 이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지도 모를 정도로...

 

어쨌든 말에서 적잖고 당연한 무게라는 것이 존재할 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그녀가 내는 목소리에는 마치 인형처럼 가볍기만 하며

전혀 위협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의 눈은 경련을 멈추지 않았고

심장은 두근거리고 있었으며, 몸은 아무리 해도 자세가 풀어지지 않았다

 

"뭐, 어짜피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겠어?

어쨌든 이 신체는 너의 사랑 그 자체인걸?"

 

그 녀석은 내 눈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내 취미는 말이야, 각본을 짜는거야

스스로 말하긴 뭐하지만, 좋은 각본을 쓴다구

그래, 누구나가 구원을 받고 누구나 행복해지는...

그런 최고로 행복하고 유쾌하며 즐거운 이야기 말이야

영웅이 있고 용자가 있고 성녀가 있고, 마지막엔 모두가 웃는 결말..."

 

데굴데굴 화제를 돌리면서 그녀는 쾌활하게 미소를 지었다

 

깨물었던 이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를 내었고

턱이 들어보지도 못한 삐걱 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이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몸이 뒤틀릴 정도의

경련을 도저히 막을 수 잇을 것 같지 않았다

 

"그 이야기 속에서 너의 역할을 결정했어...

아주 좋은 역할이야, 너 말곤 연기할 수 없어

아주아주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지

모두가 행복을 손에 넣은 가운데..."

 

눈 앞의 존재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부릅 떴다

황금 눈동자는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입술이 서로 겹칠 정도의 거리에서 그녀는 입을 열었다

 

"너는 혼자 절망해 죽을거야"

 

그것은 축복과 절망이 뒤섞인 것 같았다

눈동자를 부릅 뜬 나의 몸을 그 여자의 손이 누르고 있었다

몸이 무게를 잃은 것을 알았차렸을 때,

여자는 밖으로 떨어지는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 적어도 이 정도는 가볍게 극복해 달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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