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79화 - 바늘의 품위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7장 베르페인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79화 - 바늘의 품위 -

개성공단 2020. 4. 11. 09:48

연두색 기둥이 베르페인에서 모습을 숨겼고

브루더가 영주관 부지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도 그 때였다

 

어깨는 위아래로 움직이며, 폐는 숨을 헐떡이며 움직이고 있었고

땀은 그야말로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브루더의 가슴에 깃든 초조와 눈을 태울 정도의 감정이

그 몸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그 눈동자가 찾는 것은 은발의 검사

여동생 베스타리누에게 죽음에 가까운 중사를 입히고,

자신의 고용주에게도 칼을 겨누었다

 

물론 브루더도 용병이다. 전장의 도리는 잘 알고 있었다

전쟁터 안에서는 누구나 자신을 죽인 권리를

상대에게 내밀고 있던 것이였다.

목숨을 빼앗겨도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다고,

그렇게 큰 소리로 외치는 것과 같았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전쟁터에 나서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고

목숨이 오고가는 것을 인정해야만 들어올 수 있었다

 

브루더에게도 은발의 검객을 몰아세울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무모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베스타리누에게 치욕이 될 것이다

베스타리누라고 해도 도끼를 내걸고 결정했을 때

어느 쪽이 되든 운명은 각오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허용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히 존재했다

 

브루더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를 울어댔다

입술은 흔들리며 하얀 어금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용 따위 할 수 있겠는다

 

일찍이 나는 아버지의 처형이 당연한 거라고 스스로를 타일렀고

어머니가 잡히고 여동생을 뺏겼을 때, 나는 현실을 내던지고

빨리 이 목숨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빌며, 그렇게 살아왔다

 

그것 만은 이제 싫다. 도저히 돌아가고 싶지 않아

자신의 몸이 빨리 썩기를 바라며, 독한 술에 머리를 담가

내 의지를 진흙에 드러내고 마는 듯한 생활방식으로는...

 

그녀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손에 쥔 장침의 감촉이 묘하게 차가웠다

정말이지, 나는 어째서 이런 일을 생각하게 된 걸까

이런 정서와 열은 아주 오래전에 내던져버렸을 것인데

 

그 원인은 분명 부모의 원수 모르도 곤의 짓도,

저 은발 검사의 짓도 아닐 것이다

틀림없이 그 사나이, 고용주가 한 짓인거야

 

그럴 마음이 없다는데, 억지로 남의 손을 잡아 끌고 갔다

참으로 불합리하고 폭풍우 같은 사나이군

그 남자가 베르페인이라는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베스타리누도 이런 전장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텐데

 

정말, 귀찮게 구는 인간이군

그래도 뭐 기분 나쁜 사람은 아니였지만

 

주위를 돌아보며, 영주관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을 때

자연스럽게 브루더의 시선이 정원으로 쏠렸다

 

거기에 잇는 것은 피투성이가 된 고용주 루기스와 낯선 흑발의 여자

그리고 베스타리누를 베어 쓰러뜨린 은발 검사의 모습이였다

 

그러고보니 고용주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군

알고보니 정원에서 은발 검사와 서로 베고 있었던 건가

 

브루더는 눈을 깜빡이며, 루기스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사고는 거의 머리 속을 맴돌지 안았고

단지 눈으로부터 주어진 광경이, 

그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움직이려고 하고 있었다

손 끝은 매끄럽게 은빛의 대침을 잡고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투척을 실시했다

 

대상을 뚫어버리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

 

 

 

 

"이게 무슨 짓이지, 용병?" 

 

그 대침은 루기스 바로 옆, 정원의 흙에 파묻고 있었다

투척의 조절을 잘못한 것도 아닌, 거기에 던지려고 해서 던졌다는 듯이

몇 개의 대침이 대지를 꿰뚫고 있었다

 

카리아는 눈동자를 깜빡였다

그 의도를 묻는 듯, 바늘의 용병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상하군, 지금이야말로 자네에게 절호의 기회였던 것 같은데"

 

카리아의 입술이 흔들리며 당연한 의문이 터져나왔다

이 용병이 자신에게 적의를 표하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강철공주 베스타리누가 자신의 가족이라 했으니...

 

하지만 굳이 대침을 대지에 꽂는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호락호락 내게 존재를 알리는 것과 같았다

바늘이라는 물체를 생각하면, 당연히 적에게 들키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 상책일 터였다

 

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여전히 머리에 쓴 모자 때문에 표정을 읽기가 어려웠지만

그 눈빛이 묘하게 나쁜 것만은 볼 수 있었다

 

"......고용주를 우선 했을 뿐이다......"

 

바늘 용병은 입술을 삐죽거린채 시선을 아래로 내려다보았고

카리아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땅에 박힌 바늘 끝을 내려다 보았다

 

바늘 끝엔 꿈틀거리는 벌레의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살펴 보면,

그것은 틀림없이 아까 괴물의 파편이였다

그것이 조금씩 움직이며 땅을 기어가려 하고 있었다

 

루기스에 의해 그 살이 흩어져 붕괴의 길을 걸었지만,

아무래도 몇몇 조각은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본능에 새겨진 적의대로 루기스에게 달려들려 했단 말인가

카리아는 바늘 끝을 발바닥으로 짓밟으며, 벌레를 짓눌렀다

 

"흐음... 그렇군, 감사는 표해야겠지"

 

카리아는 은빛의 눈을 흔들며, 한 손의 검을 들고 말을 이어나갔다

 

"네놈이 내 목숨을 가지러 왔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검으로 응하지

자, 어떻게 하겠느냐, 검사여"

 

눈 앞의 용병은 고용주를 우선했다고 그렇게 말했다

그 가슴속에는 나에 대한 원한이 쌓여 있을 텐데

그것을 제쳐두고 루기스를 향한 적의를 제압하는 것을 우선시했다

 

과연 이 사람은, 단지 욕심만 부르는 그런 용병이 아닌

무엇인가 품위를 가진 용병인것 같다

 

그렇다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는 없겠군

 

"죽는 것은 질색이야......하지만, 등을 보이는 것도 질색이야

고용주는 이 자리에서 돌려 받아야 겠어"

 

순간 미소조차 지으며 그 의지에 경의를 표하려던

카리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녀석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돌려 받는다니, 루기스는 우리의 동료야, 당신에게 인도할 이유는 없어"

 

피에르트가 옆에서 똑같이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맞지 않는 듯한, 

어딘가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뭔가가 어긋나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늘 용병 역시 눈길을 한번 흘기며, 입술을 움직였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고용주는 나하고 같이 온 아가씨 말고는

의지할 녀석이 없다는 이야기 였다고

그런데 어떻게 동료라는 것이 둘이나 있다는 거야"

 

그렇군, 루기스가 그런 말을...


카리아의 뺨이 경련이라도 한 듯이 씰룩거렸다

피에르트도 마찬가지 깊은 호흡을 한번 내쉬었다

그녀들은 시선을 루기스 쪽으로 행했다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차분히 네 입으로 

어디 한번 말해보실까, 루기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