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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학원 외전 3화 - 방과후 교실의 두 사람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학원 외전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학원 외전 3화 - 방과후 교실의 두 사람 -

개성공단 2020. 7. 10. 23:49

피에르트, 그렇게 불리는 그녀는

당초 주위 전체로부터 덧 없는 소녀라는 지위를

획득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급우나 담임에게서도 말이다

 

아니 솔직히 그 본질을 알면 덧없다고 부르기는 꺼려진다고나 할까

덧없다는 말은 너무 실례해서 도저히 못할 지경이다

 

그래도 뭐... 그녀가 덧없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말이 많지 않고, 독서 같은 것에 친숙했다

웃음도 어딘가 점잖고 무엇인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성질이 있었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 피에르트는 남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성적은 우수, 얼굴은 어딘가 어른스러운 느낌을 주었고

스타일 또한 다른 여자들보다 한 단계 위였으니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했다

 

예쁘지만 표정이 험상궂으며 접근하기 어렵다고 여겨졌던 카리아보단

훨씬 남자들의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다

아직도 피에르트가 덧없는 소녀라고 믿는 놈들이

지금의 그녀의 모습을 본다면... 바로 졸도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루기스, 방금 그거 봤어!? 어때? 한번 더 보자!!"

 

"열번이나 넘게 봤잖아, 이제 적당히 하고 넘기라고..."

 

"싫어, 한번 더 볼거야"
 

"그럼 처음부터 묻지 말라고! 대체 뭣 땜에 질문한건데!?"

 

"이 세상에 의미 있는 질문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너... 나에게 시험공부 도움 받고 싶지 않은거야?"

 

너 이놈... 그걸로 나를 구슬릴 셈이였구나...?

 

피에르트는 요즘 나에게 선택사항이 있는 것처럼 꾸며놓고

실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비겁하게 행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요즘의 비디오 게임에서도 이 정도로 의미가 없는 선택지는 

마련하지 않을 것인데...

 

우리는 텔레비젼을 보고 있었고

그 내용은 우리가 초등학생이였을 무렵

크게 유행했던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이였다.

 

어린 시절에는 많은 소녀와 소년 사이에서 일대 붐을 일으켜

셀레얼도 TV에 매달리며 살던 기억이 날 정도였다

 

줄거리는 전형적인 마법소녀물

실제 당시 사회 문제를 많이 제기하는 내용도 담고 있어서 그런지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했다

 

그래서인지 여러 번

마법 소녀들이 변신을 반복하며, 

여러차례 의상이나 굿즈를 내놓는 수법을 취해

다소 문제가 되긴 했지만... 그건 이번 주제와는 다르겠지

 

어쨌든 지금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긴 해도

나름대로는 즐길 수 있는 내용이긴 하다

 

피에르트는 내 방에서 리모컨을 잡으며 

몇 번이나 명장면을 반복해서 보지 않으면 안되는 듯 했다

 

"좋은 건 몇 번이나 봐도 상관 없잖아! 명작은 몇 번봐도 질리지 않아!"

 

"그렇다고 해도, 이 장면만 몇 번째인지 아는 거야?

벌써 열 번째야! 셀레알, 어떻게 생각해?"

 

내가 다리 위에 앉아있던 셀레알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단지 화면 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안되겠어, 이 녀석 피에르트의 편이라는 건가

 

피에르트는 그런 모습의 셀레알을 본 듯, 득의양양하게 가슴을 폈다

 

"거 봐, 자. 나에게 사과해야 겠지?"

 

"너 그 이상 말하면, 내 방에 있는 네 마법소녀 굿즈 전부 팔아 치울거야"

 

"아, 잠깐, 그런 짓 하지마, 나 울어버릴거야, 진짜 울어버린다, 용서해줘"

 

이겼다. 구체적으로 뭘 이겼는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존엄을 팔지 않아도 된 것이다.

피에르트는 눈물을 글썽이면서까지 내 옷자락을 당기고 있었다

 

언젠가 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현 시점, 벽장을 포함한 내 방의 4분의 1정도는

피에르트가 소유하는 마법소녀 굿즈가 파묻혀 있었다

 

형형색색의 그것들은 정말로 내 방을 팬시로 장식해주고 있었다

 

이것들 때문에, 나는 친구 중 어느 하나도 내 방에 부르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들여보냈다간, 내 별명은 미스터 팬시가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친지를 포함해, 피에르트와 내 사정을 알고 있는

헤르트나 카리아, 알류에노 정도일 것이다

 

"루기스 지금 들었어? 지금 명대사!"

 

"......."

 

"못 들었구나, 처음부터 다시 틀거야"

 

"처음부터는 필요 없잖아!? 방금것만 다시 되감기 하라고!"

 

"안 돼! 처음부터 다 본 다음에 여운이 있어야 그 대사가 살아!

명대사만 보고 이야기를 알게 되면 곤란하다고!"

 

셀레알, 동의하듯이 고갤르 끄덕이진 말라고

네가 그렇게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건 처음봤어

 

아, 피곤해... 다 내쫓아버리고 싶다...

 

 

 

 

 

*

 

 

 

 

 

피에르트를 처음 만났을 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는 잘 기억하고 있다

 

"저기, 몇 시쯤 교실에서 나올거야?"

 

그게 첫마디 였다

아마 그 이전에도 업무적인 대화를 한 적은 있겠지만

내가 능동적으로 피에르트에게 말을 건 것은 그것이 처음이였다

 

뭐 이번의 이것도

열쇠 당번으로서의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서의

건 소리에 불과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피에르트는 내 목소리에 놀라지도 않고 표정없는 얼굴로 응수했다

손 주위에는 공부를 위한 도구가 펼쳐져 있었다

아마 부지런히 방과후까지도 공부에 힘썼을 것이다

학원에 갈 때까지 시간을 때우려고 했던 건가

 

"...미안해, 벌써 시간이 다 된건가, 도서관으로 옮기도록 하지"

 

"서두를 필요는 없어"

 

그 때 피에르트에게 돌아온 목소리에서 읽히는 인상은 영락없이 허무했다

 

밀면 쓰러질 것 같은... 살며시 날카로운 말을 내뱉으면

바로 무너져 버릴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존재 자체의 분위기가 어슴푸레 했던 것이다

 

그래서 더 눈에 띄었다

그리고 동시에 반이나 주위의 남자들에게서도

왜 그녀의 인기가 있었는지도 잘 알 수 있었다

 

뭔가 지켜주고 싶은 분위기라는 것이 있는 것이였다

 

남자라는 것은 감성적인 면에 약한 생물이니까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 것 같은 것을 보면

조금 도와주고 싶은 것이 남자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

아니 그 점은 여자든 남자든 다르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 그냥 인정(人情)이라고 말하자

 

그래서 무심코, 말하지 않아도 되는 한 마디를 더 해 버렸다

 

"아... 뭔가 사정이 있다면, 교사에게 말해두어 문을 열어둘께"

 

"......."

 

"......."

 

그렇게 공백만이 흘렀다

 

무시에도 몇 단계라는 것이 있다

시선은 이 쪽을 향하지만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부터

무엇 하나 반응하지 않는 것까지 다양했다

 

피에르트는 그 궁극점에 서 있었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듯이 허둥지둥 짐을 싸들고 복도를 걸어갔다

 

좋아, 못 들었던 걸로 치자

아무리 생각해도 소리가 닿지 않는 거리는 아니고

내 성량도 어느 쪽인가 하면, 작지 않았던 것 같지만...

 

아냐, 그만하자

그 이상으로 추구하면, 내가 죽고 싶어질거야

 

의외로 내 정신은 취약했다. 요즘말로 유리 멘탈이라고 해도 좋겠지

만약 여기서 한 마디 더 말을 걸고, 그것까지 무시당한다면

나는 아마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거야

 

괜히 맹수를 건드려 재앙을 부르거나

살을 찢어 소금을 바르는 듯한 취미는 내겐 없었다

뭔가 되게 창피하내...

 

"루기스 씨, 뭐하시나요? 하교 시간인데"

 

"여자의 마음에 대해 상객했어"

 

"피곤하세요? 카레라도 먹으러 갈래요?"

 

지나가는 길에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건 너뿐인가

역시 남자들끼리 우정이 제일인거 같아

조금 더, 헤르트가 이상하게 인기가 있는 의미도 알 것 같았다

 

이후 한 동안 피에르트와 말을 나눌 기회가 없었다

 

...랄까, 원래부터 교우관계가 없었고

그 후부터는 피에르트도 내가 말을 걸기전에 나가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긴 당연했다

 

그리고 그 시점부터 나 또한 피에르트에 더 이상 관여할 생각도 없었고

저쪽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래서 다음 접점이 있었던 건, 교실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곳에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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