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5장 배덕 편 (54)
8성 연합
그만뒀으면 좋겠군 리처드 퍼밀리스는 눈썹에 힘을 주고 그런 일말의 생각을 가슴속에 지웠다 눈앞에는 본래의 목적이 되는 제자인 루기스 그리고 쇠사슬이라도 감긴 것처럼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주위를 에워싸는 여자들이 있었다 기사 카리아=버드닉 마법사 피에르트 라 볼고그라드 그리고 엘프의 여왕인 핀 엘디스. 그 광경만 본다면 루기스가 영웅 호색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리처드는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만한 것을 3명이 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모두들 눈빛이 정말 위험했다 단지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여자의 그것이 아니였다 그보다도 뭔가 더 무거운 것을 잉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져온 술병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리처드는 거대한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기댔다 그러고는 손주..
너는 누구와 얘기하는 거냐, 우리를 보고 말해라 은빛 눈에서 쏟아진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움켜잡았다 사소한 아픔이, 배 밑바닥으로부터 치밀어 올라오고 있었다 누구랑 얘기하고 있는가 그런 단순한 물음에 나는 전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입술이 마치 반응하지 못하고 일그러져 갔다 몇 번인가 머리에 말이 떠오르긴 했지만 하나하나가 가볍고 얄팍한 것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말을 카리아는 물론 피에르트와 엘디스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세 쌍의 두 눈은 허용심 같은 것은 마치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진지했고, 그리고 어디까지나 용서가 없었다 내가 설령 눈을 돌릴 일이 있으면 그 시점에서 목덜미를 물어뜯길 것 같은 그런 사나움을 잉태한 눈이 나를 ..
"참 잘해주었군 영웅... 아니, 이제는 대악당이라고 불러야 할까? 응?" 실내에서, 즐거운 듯이 은발이 흔들렸다 은색의 눈은 고혹적으로 모양을 바꾸면서 그 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 있었다 그것도 묘하게 센 힘으로 말이다 뭐야, 내가 뭘 했다고? 항의할 겸 눈을 가늘게 떴지만 카리아는 입술을 짖궂은 고양이처럼 치켜올리며 뺨에 홍조를 띠었다 예감이 너무 안 좋았다 이런 얼굴을 하는 이 녀석은 대개 변변한 말을 꺼내지 않는 법인데 말이다 아니, 오히려 평소에도 별거 아닌 소리만 했던 것 같기도 한데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뺨을 실룩거리며 침대에 걸터앉은 채 입을 열었다 "비꼬는 소리는 이제 질리는데 말야 뭐야? 술 상대라도 해주길 바라는 거야?"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하튼 일찍이 동경..
느낀 건 피와 내장의 냄새 사람의 비명이 온 곳에서 만연했다 동화 따위는 개나 줘버릴 그런 광경이 있었다 눈을 부릅뜨니 시선 끝에서 절명하는 스승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놓쳤다는 이유로 칼을 버리고 어쩔 수 없이 거대한 돌도끼에 짓눌리는 모습 그 모든 것을 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알던 사람이 부서지고 죽고 잃는 모든 것을 그런 악몽 같은 광경은 현실감이 넘쳤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여하튼 그것은 틀림없는 현실이었으니 당연할 것이다 거기서 나는 무엇을 했는가? 적에게 부서질 것을 각오하고 용감하게 싸웠었나? 한바탕 으르렁대기라도 했었나? 절규의 소리라도 질렀었나? 아니... 난, 무엇 하나 하지 않았었다 할아범의 말을 면죄의 증거로 그저 등을 보이고 도망치기만 했었다 은사의 죽음을 발판 삼아 살아남았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