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5장 배덕 편 (54)
8성 연합
"....여기에 왔다는 건 피에르트, 상대는 자네 모국이라고?" 입구에서 피에르트 라 볼고그라드가 얇은 장갑을 손가락에 대고 있는 와중에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가 들렸다 피에르트에게는 이제 누구냐고 물을 것도 없는 엘프의 여왕 핀 엘디스의 목소리였다 원래부터 이곳은 엘디스가 임시 거처로 삼고 있는 왕도 내의 저택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닌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었다 아마도 정령술의 언령을 이용해 소리만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직 요양중일 텐데 무리를 하는 건가, 아니면 한가한 걸 지도 발을 쿵쿵 구르며 종자의 안내를 기다리지 않고 피에르트는 엘디스를 향해 말했다 그녀는 귀에 쟁쟁한 목소리로 대답하듯 입을 열었다 "생각하는 바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하지만 안 가겠다고 하는..
갈라이스트 왕국 왕도 아르셰의 중심지는 원래 왕이 거처하는 성이자 옥좌일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검댕과 잿더미로 얼룩진 그곳은 옛 영화 속의 잔향조차 느낄 수 없었다 이제 왕은 왕도에 있지 않았다 때문에 사람들이 올려다보는 것은 비교적 무사했던 다른 궁 거기에 마련된 임시 옥좌였다 진좌하는 옥체는 녹색을 기조로 한 귀인복을 입고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입술을 열었다 "싫습니다, 지금 당장 즉위할 순 없어요 잘도 그런 말을 하는 군요, 지금은 그럴 상황도 아니잖아요" 필로스=트레이트, 첩의 공주 그렇게 불리는 그녀는 눈앞에서 몸을 굽히는 귀족의 말을 일축했다 남자는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남자는 한번 말을 멈추고 그렇게 혀를 돌렸다 "그러나 공주님, 왕도의 백성들은 이제 하루하루를..
괴뢰도시 필로스 그 전체가 갑자기 소란스러움을 더해갔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전령병이나 사람이 오갈 때마다 그 강도가 커졌다 그들이 떠드는 말은 여러 가지지만 그 근본에 있는 것은 단 하나 동방의 볼버트 왕조가 자치도시 국가에 대한 서침 이유도, 배경도 불명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볼버트 왕조는 웅장한 마법 장군을 필두로 그 날카로운 송곳니를 도시국가군으로 행진하고 있었다 자국 또한 마인 재해에 시달리면서 왜 그러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단지, 타국정세를 보는것 뿐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것은 없었던 전례는 아니였다 볼버트 왕조는 역사상 여러 차례 그 지배 영역을 확장하고자 도시국가군을 침공했었다 때로는 기습을, 때로는 다수의 군사를 거느리고 말이다 하지만 수많은 장병의 피..
"살레이니오... 죽어버렸구나...." 도시 필로스의 외벽 담배를 입에 물고 지평에 이어진 산맥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아쉬운 듯이 자줏빛을 비추고 그렇게 해서 산간으로 숨어들어 갔다 내 말에 호응하듯 브루더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뭐야 고용주 군사를 거느리고 온 정적이 죽었잖아 조금은 기뻐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브루더의 어조는 희한하게도 기분이 상한 것처럼 느껴졌다 특별히 그의 목숨을 앗아간 것을 공격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뺨을 무너뜨리고 어깨를 움츠리면서 말했다 블루더의 모자 테두리가 툭 튀고 있었다 "뭐... 나쁜 일은 아니지 하지만 이만한 일을 저지른 노인네야 얼마나 역량이 높은 사람이였을까 ...라는 호기심이라는 거지" 외벽에서 내려다보니 많은 눈..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흑검이 허공을 갈라섰다 일리저드가 자랑하는 현란한 무술 흑색 갑옷이 말 그대로 춤추는 듯한 가벼움으로 뽑혔다 테르살랏의 긴 다리가 가늘게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을 맞이하는 은발은 출렁였다 장대한 검붉은 검이 적의 다리를 씹어 으스러질 듯한 기세로 떨쳐졌다 마성의 요염함마저 지닌 그 칼은 싸움을 환영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보면 남다른 살의로 가득 찬 물림이었으며 서로의 한바탕은 그대로 목숨을 빼앗으려고 하기 위해 위화감 없는 광폭함을 간직하고 있는 살인 그 자체였다 하지만 카리아와 테르살라랏, 두 마리 맹수에게 그것은 서로 죽이는 려는 행위가 아니였다 다만 사냥감의 소유권을 서로 주장하는 데 불과했다 짐승은 자기 사냥감에 집착하고 설령 조각이라도 다른 사람이 건드리려고 한다..
갈라이스트 왕국 상공 보석 아가토스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몸을 움츠렸다 자신의 육체를 보석에 의지한 채 편히 지내고 있었다 시선의 끝에 있던 것은 인간들이 하고 있는 것 아득히 먼 상공에서는 벌레들이 움직이는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왕도의 부흥 작업일 것이다 질리지도 않는 건가, 아가토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찌푸리게 했다 바로 얼마 전 마인 드래그만과의 대립으로 불타 볼품도 없어진 왕도는 이제 겨우 인간들의 손에 의해 완만한 부흥을 보이고 있었다 매일매일 어디선가 인간들이 쏟아져 나와 집이니 교회니 하는 것을 만들어 겄다 어떻게 그렇게도 똑같은 일만 되풀이할 수 있을까 아가토스는 참 신기했다 인간 모두가 예전의 영광을 잃었음에도 불..
갈라이스트 왕국의 동쪽에 위치한 독립자유 도시 지역보다 더 동쪽 대륙 동방부 일대는 마법국가 볼버트 왕조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마법사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장소라고 불렸다 마법문화를 짙게 이어가는 이 땅에서 마법은 일상생활에 뿌리 깊게 박힌 뗄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질적인 취급을 받을 수 있는 마법도 이 지방에 있어서는 좋은 이웃에 지나지 않았다 마법사가 마를 담은 돌은 밤을 황황히 비추고 의술로는 결코 아물지 않는 상처가 마법의 이름으로 완치되었다 볼버트 왕조의 마법 수준은 대국 갈라이스트에 비교해도 넘사벽 수준의 것일 것이다 비견할 만한 존재를 찾을 수조차 없다 아무튼 이 나라의 마법사는 다른 나라의 마법을 미개하가고 부르니 말이다 그렇다고 마법이 모든 ..
갈라이스토 왕국에서 서쪽에 가로놓인 수많은 섬들 이 일대에서는 제도 각국이 국가를 이루고, 또 여러 나라가 동맹을 이루어 낸 서방 연합 로아가 있었다 최초의 인간왕 메디크를 배출한 서방 연합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신앙을 굽히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다 그 때문에 대성교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많은 민간신앙을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였다 과거에는 동쪽의 갈라이스트 왕국 남동쪽의 일리저드와도 패권을 다투었지만 아직 대륙에 그 발길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로아는 서방의 지배자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이 다행이였다 이번 대재해에 있어서, 영향 또한 최저한이 될 것이니깐 마인이라는 존재가 섬나라 안에 태어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미 제도 국가의 절반이 마인 보르곤의 침공에 피와 ..
물결치는 칼날을 흔들면서 버나드는 눈을 부릅뜨고 그것을 보았다 눈앞에서 한 남자가 보랏빛의 검을 약간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키는 남자 평균보다 조금 큰 정도 별로 크지도 작지도 않고 체구에서도 특별힌 점이 없었다 그저 그의 두 눈동자가 강하고 험준한 정도일 것이다 그 체격만을 본다면 그는 충분히 일반적인 범주에 들었다 과거 버나드가 알아본 강자 또 상상했던 영웅용사라는 존재와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이 남자야말로 지금, 틀림없이 문장교 군권의 꼭대기에 있는 자 눈부신 존재보단 재앙, 선역 보단 대악으로 알려진... 루기스 뜨거운 호흡이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것을 버나드는 느끼고 있었다 주인의 원수에 대한 끝없는 증오와 그렇게 해서 영웅으로 불리는 존재와 칼을 주고받는 고양감 그 두 종류가 기묘하게 섞여..
버나드에 의한 도시 필로스로의 진군 감행 뜻밖에도 그 자리에 있던 천여 병사의 대부분이 이 진군을 따랐다 살레이니오의 유해가 마수에게 먹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남은 것 말고는 거의 전부였다 누구나 목적을 갖고 싶어했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내 할 일을 원했던 것이였다 지휘관 살레이니오가 숨져 공백이 된 그 자리에 버나드의 말이 꽂혔다 버나드는 물결치는 칼날을 허리에 차면서 선두에 올랐다 이제 도시 필로스의 그림자가 그의 시선 끝에 어른거렸다 살레이니오의 원정, 그 전술 목표였던 도시 현재의 문장교 거점인 동서를 잇는 이곳을 함락시키면 성녀도 이곳과 교섭하는 자리에 앉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살레이니오가 죽은 지금은 그렇게 쉽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버나드는 잘 알고 있었다 성녀 측과의 협상도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