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5장 배덕 편 (54)
8성 연합
볼버트 왕조 수도가 내려다보이는 베핌스 산 산의 표면이 은색으로 물들여져 주위를 비예하는 모습은 산맥의 왕과 같은 위엄을 느끼게 했다 해발고도는 구름의 너울을 뚫고 하늘 높이까지 뻗어 있었다 마치 빈 물건에서 실로 낚아올린 것 같았다 과거 금은색의 마석을 많이 산출해 볼버트 일대를 비옥하게 했던 이 산맥은 그 혜택을 잃은 지금도 그 위용에 따라 주위에 영산으로 추앙되고 있었다 일찍이 용족이 근거지로 삼았다는 사실도 이 산의 신화에 많은 능선을 그렸는지 모른다 볼버트 왕조 수도가 이 산기슭에 정해진 것도 정당한 혈통이 없는 시조가 영산의 위용을 왕관으로 바꾸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영산의 중심부에 그것이 있었다 검은색으로 빛나는 현란한 비늘 하늘을 온통 뒤덮을 정도의 커다란 날개 그것들은 위..
볼버트 왕조의 영토에서는 한동안 연기가 끊이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것은 촌락을 불태운 것이자, 마성에 대한 순종의 표시 싸울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노인과 어린이는 맨 먼저 죽었고 여자는 사나운 군사들에게 그 몸을 난폭하게 다루며 죽임을 당했고 끝내는 마지막까지 항거한 남성들까지 죽었다 생각건대 이것이 전쟁의 결과라면 아직 구원은 있었다 그 행위에는 하나의 목적이 있고, 죽음의 끝에는 새로운 시대가 있는 법이니 이와 비교하면 아직도 의미 있는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으...으아아아아아아악!" 마법사 군단이 포위한 마을을 불태워 갔다 그것은 전쟁이 아닌 단순한 학살이었고, 변변한 저항은 없었다 무기도 없고 훈련도 받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 마법사와 병력의 집단을 당해낼 리 없었다 여자의 비명소리..
병자와 위병만을 도시에 남겨두고 재편된 문장교군이 갈루아말리아 성벽 앞에 줄지어 섰다 수는 갈루아말리아의 지원병들을 더해도 대략 3천 수도 장비도 충분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웠지만 모든 것을 바라는 것은 언제나 사치 사치를 바랄 수 없는 신분이라면 수중에 있는 지폐로 어떻게든 할 수 밖에 없다 전쟁도 인생도 그런 것이였다 말의 발걸이에 발을 딛고 내 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어 여기서 기다린다는 건 나쁜 선택이 아냐" 여기서 벌써 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되돌릴 수 없다고 그렇게 눈 아래에 있는 레우에게 전했다 하얀 머리카락이 출렁이고 선혈 같은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상냥한 듯, 그러면서도 허무한 미소를 레우는 지었다 보석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전..
- 동방 원정 갈루아말리아 성벽 내 몇 번인지 알 수 없는 회의장에서의 말다툼에서 누군가는 질리지도 않고 입에 거품을 물고 누군가는 시큰둥한 얼굴로 신음 소리를 냈다 그곳에서는 참석자 모두가 스스로 어떤 역할을 담당하려 하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볼버트군 하인드 뷰세는 애써 냉정하게 전체의 의견을 취합하도록 움직이고 있었고 반대로 에일린 레이 라키아도르는 각자의 의견을 촉구하기 위해 첫째로 입을 열었다 그런 모습으로 보아 그들은 이런 자리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마법사라는 개성 덩어리 같은 인간들이 그럭저럭 논쟁할 수 있는 데는 이들의 도움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웅을 따르는 보검에게는 그 어느 쪽도 안중에도 없었다 자랑스럽게 보검은 그 아름다운 날을 자랑했다 루기스는 말없이 회의장을 바라보고만 있..
- 희생을 좋아하는 자, 좋아하지 않는 자 대륙의 동방 볼버트 왕조가 영향을 미치는 일대는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더욱 마법화 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영주에 의한 하천 공사의 흔적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촌락의 마법사에 의한 의료 행위나 마법 연료의 존재로부터 보이는 것 등 다양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마을 주민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대륙 중앙의 비옥한 땅을 독차지하는 갈라이스트 왕국에는 그 규모에서 못 미치더라도 촌락 하나하나를 따지자면 볼버트 왕국은 국가적으로 부자이며 갈라이스트 왕국보다 더 잘살고 있었다 한 작은 촌락에서는 눈 투성인데도 어린아이들이 마을 광장에서 뛰어다녔다 모두가 즐겁거우면서 명량하게 놀고 있었다 오늘은 영주가 밖을 나돌..
볼버트도 문장교병도 그 광경에 절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뺨에 눈의 한기가 아니라 기묘한 화끈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시야에 있던 것은, 대지 자체를 잠식하려는 것 같은 큰 모래 폭풍 바람은 흩어지고 고운 모래가 떠오르며 하늘을 두드렸다 순식간에 두 병사 주위에 모래가 휘감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 광경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것이 누군가에 의한 마법인가, 자연 발생한 이상인가 마법이라면 양군을 모두 말려들게 할리는 없었고 자연발생이라면, 갈루아마리아에 이런 현상이 있을 순 없었다 그럼 뭐야.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눈꺼풀도 제대로 뜨지 않는 모래 폭풍 누구나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가 혼란에 뺨을 맞았다 손발에 모래가 얽힐 때마다 힘이 빠지고, 무기를 갖고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마법수병 또한 그저 힘없..
십중팔구가 함정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사자 입에 스스로 발을 집어넣는 것과 같았다 사람들은 그렇게 알면서도 때로는 그렇게 해야할 때가 있었다 즉, 그것은 몰리다 못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였다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갈루아말리아 후문 앞 예비병과 수비병 일부를 쪼개 편성된 강습부대는 뜨거운 발을 견디지 못해 모인 자들이었다 총원이 이백 명 예비병 갈루아말리아 지원병까지 모은 것이였다 카리아가 이끄는 정면군은 적대감을 계속하고 있어 이쪽의 원군으로 돌릴 수 없을 것이다 돌리는 순간 적이 정면을 향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이였다 막다른 골목인 후문 쪽은 예비병으로 모두 보충해야 했다 문장교병 버나드는 출렁이는 칼날을 가볍게 헝겊으로 닦으며 그저 돌격 신호를 기다렸다 그는 소음..
볼버트 병사들과 같이 가도로 나온 부근 병사들의 비명이 귓전을 때렸다 그것은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시야에 뚜렷이 비치지 않았지만 하지만 그것을 듣는 것만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용이하게 상상이 갔다 전쟁터 끝나 있어야 할 전장이 아직도 갈루아말리아에서 숨쉬고 있다 이 전장의 음악은 그 증거이겠지 "어이, 볼버트 군은 멈춰선 거 아니였어?" "루기스 사령관, 미리 사과하겠다 어느 군에서나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자는 존재하는 법이다" 내가 말을 줄지어 가도를 달리며 말하자 볼버트 군 부장 하인드는 언짢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대꾸했다 군인답다고 해야 할지, 마법사답지 않다고 해야 할지 표정에는 감정을 감추겠다는 의도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미안한 감정이 하인드의 눈에 깃들어 있었다 그..
볼버트군 천막 안 에일린 레이 라키아도르는 그 어느때보다 언짢은 듯한 표정으로 찡그린 콧날에 주름을 찡그렸다 전령병은 부장의 그 모습에 움찔했다 그는 무심코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도록 눈을 내리깔았다 사실 전령병들도 에일린이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할 수 없이 입으로 명령서를 전달하는 것이였다 모든 것을 듣고 한 박자를 놓은 뒤 에일린이 말했다 "……철수? 누가 그런 말도 안되는 명령을 내린 겁니까!!" 에일린의 예리한 손끝이 아무렇게나 허공을 맴돌았다 말투가 아직 냉정하긴 했지만 그래도 표정과 침착하지 못한 몸짓이 그냐의 속마음을 역력히 드러냈다 결국 이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였다 에일린을 오래전부터 따라다니던 고참병들은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우수하고 냉정 침착..
성벽 도시 갈루아말리아보다 멀리 떨어진 상공 마조는 그 큰 입을 유들유들하게 벌리며 새답지 않은 울음소리를 내며 몸집을 흔들었다 "이야... 라브르 만전을 다한거야? 고작 인간에게 상처를 받을 줄이야 옛날 같았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새소리 보다는 비웃는 듯한 목소리 라브르에겐 낯익은 목소리였다 라부르와 마찬가지로 대마 브리간트를 섬기는 마인, 독극물 쥬네르바 그가 자신의 종복을 거쳐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을 것이다 익류왕인 그에겐 그 정도 일은 껌이였다 라브르는 수중에 검은 눈의 마법사를 안은 채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말했다 목이나 옆구리가 칼에 찔린 통증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쥬네르바, 싸움터에서 만전을 가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즉시 정정하세요, 그저 인간이 그 자리에서 저를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