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5장 배덕 편 (54)
8성 연합
마의 반짝임이 자유자재로 전쟁터를 휘저었다 그것은 변덕스러운 비와 같으며, 엄숙한 심판과도 같았다 이러한 업을 이룰 수 있는 존재는 내가 아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보검을 받쳐들고 자세를 갖추는 순간 시야에 그 보석의 반짝임이 엿보였다 어디까지나 무작위로 보석 아가토스는 전장에 계속 반짝임을 내렸다 아니, 그녀에게 있어선 이것은 전쟁터 따위가 아니라, 단순한 놀이터인지도 모른다 혁혁한 마인이 나에게 등을 보이듯 내려섰다 그 와중에도 수많은 보석들이 허공을 누비며 전장의 시야를 독점하고 있었고 누구나 그 위협에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수만 명의 인간과 싸우는 전쟁터 지금 단지 일체의 마인 앞에 정지되어 있었다 참으로 기묘한 풍경이다 뒤에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일찍이 보았던 붉은색의 머리카락이 ..
볼버트군 부장 하인드 뷰세는 늘 가늘게 뜨고 있던 눈을 부릅떴다 그도 그럴 것이 알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였다 마법의 진수라고도 할 수 있는 내가... 지금, 본 적도 없는 마의 극광에 삼켜져 있었다 이런 사태... 하인드는 전혀 상상을 하지 못했다 아니, 그건 하인드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병사들도, 부대장들도 또 다른 부장 에일린 레이 라키아도르라고 머리 한 구석에 두는 자는 전혀 없을 것이다 갈라이스트 왕국이든 도시국가군이든 마법에 있어서는 볼버트 왕국에 비해 훨씬 미개한 땅 비슷해지는 것조차 먼 훗날의 일일 것이다 그런데 마도장군의 진수를 깨물 듯이 극광을 발한다는 것은 어찌 상상할 수나 있겠는가 하인드는 동요에 젖은 가슴속을 주위에 있던 병사들을 내려놓으며 한 번 눈을 감고..
폭풍과 번개가 출렁이며 전쟁터를 휩싸였다 일시적으로 구름이 걷히면서 눈을 녹이는 듯한 상쾌한 햇빛이 대지를 꿰뚫었다 시대를 뛰어넘어 다시 현현한 거인과 용의 상극 그 결과는 아무래도 거인의 승리로 끝난 듯했다 그 자체는 기쁘기 짝이 없다 카리아의 득의양양한 얼굴이 떠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러한 사태 그 자체가 상정 외였다 저 허공을 그을리는 번개용 설마 그토록 큰 마법을 조타하는 마법사가 적측에 있을 줄이야 적어도 옛날에는 나는 피에르트 정도밖에 본 적이 없었다 최악이다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러면서 씹는 담배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마법은 편리하지만 전쟁터에서 다룰 수 있을 만큼의 손쉬움이 없었다 모험자가 하는 마물 토벌이라면 몰라도 전쟁터라는 대규모 장소에서 마법은 그저 조연이였..
이틀이 지났다 갈루아말리아 대성문 동쪽에 세워진 그것은 서진을 계속하는 볼버트군을 정면으로 맞아 싸우기 위한 방패막이가 되도록 강화되고 있었다 성벽을 보강하고 울타리를 쳐 진지를 만들고 군인들이 숨을 쉬며 기다렸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을까 적은 4만에 도달하는 대군 그것도 마법을 갖춘 정예뿐이였다 병사 누구에게나 그런 생각이 있었다 모두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지면에 몸을 가까이하면, 그것만으로 발자국 소리가 들려 올 것 같았다 병사는 예감하고 있었다 몇 시간 전에 척후로부터 보고받은 그것이 곧 모습을 나타낼 것이라고 몇 분이 지나 성문 앞 그렇게 성문에 배치된 병사 모두가 초조하게 침을 꿀꺽 삼키는 순간이었다 떠오르는 햇빛과 함께, 그것이 왔다 그것은 마치 빛으로 가득 찬 대지를..
- 유일한 종족 은발이 사르르 무너졌다 카리아의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린 은실은 비단결 같은 요염함으로 허공에 흔들렸다 카리아에 밀리듯 루기스는 몸을 뺐다 눈을 부릅뜬 카리아의 시선이 똑바로 루기스의 눈을 태우고 있었다 입술을 가볍게 비죽거리며 카리아가 속삭였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그래, 네가 말한대로 나는 네놈의 방패다, 당연하지 하지만 너는 그 방패에서 어디론가 떨어져 있으려고 하잖아 그러면서 무슨 방패... 아... 이것도 몇 번째 문답이구나 생각해보니, 넌 내가 쫓으면 도망가고, 잡혔다고 생각하면 또 달아나버리지" 루기스의 눈동자가 굳어지면서 움직임을 멈춘 것을 카리아는 가까이서 반갑게 보고 있었다 아마 이 자리를 어떻게 모면할까, 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때뿐, 그의 가슴 속에..
"라브르... 마인 라브르라... 전혀 짐작이 않가네" 가슴속으로 중얼거리고 입으로 말을 해 보면서도 내 머리에는 그 마인의 모습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마인 러브르 볼버트 군이 그녀와 함께 있다고 타 도시와 척후병으로부터 여러 이야기가 들어왔다 그 빈도라면 마치 볼버트 군이 그 이름을 떠들썩하게 알리는 것 같기도 했다 볼버트 왕조가 그의 마인과 힘을 합쳤는지 아니면 목줄을 매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적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원이나 그 모습조차 잡히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혀를 차고 머리를 감쌌다 아직도 머릿속에 숨겨져 있는 예전의 기억 중 유일하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대마, 마인들에 대한 지식뿐인데 이런게 생각나지 않아서는 심히 곤란했다 물고 있던 담배를 다시 물고 갈루아말리아 성벽 내 집..
마법은 기적의 현현이면서 참으로 합리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누구나가 체내에 가지는 마력이라고 하는 연료로 술식이라고 하는 것을이용해 밖으로 사출하는 것이였다 말하자면, 구조 자체는 정말 단순한 것 그래서 아득한 태고의 시대에서도 원시의 마법을 부리는 자들이 있었고 영적 기적을 가진 이들은 때로 마녀라는 것들로 불리곤 했다 그러나 그러한 태고시대부터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근대에 이르기까지 마법은 신비의 영역이자 인간이 발을 디딜 수 없는 영역이기도 했다 연구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까지 행하고 있는 것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 뿐이였다 그 신비를 풀어 체계화시켜 하나의 학문으로 평가절하한 자들이 있었으니 아르티아 통일제국의 초대 황제로서 인류 신화 그 자체 그녀는 마법 가운데 인간이 이해하기 쉬운 부분만을..
"문장교가 파병을 하려는 건가, 철수를 하려는 건가, 라키아도르?" 볼버트 왕조가 자랑하는 마도 장군 중 한 명인 마스티기오스 라 볼고그라드는 타는 듯한 빛을 검은 눈 속으로 드러내면서 굳은 입을 열었다 시야에는 이미 도시국가군의 동쪽 끝, 문화도시 딘하임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시문은 한 치의 틈도 없이 닫혀 있어 여느 때의 흥겨운 분위기는 간파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다른 도시국가에서 온 원병도 없는 듯했다 항상 소란스럽고 재미있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딘하임을 아는 이로부터는 기이할 정도로 너무나도 조용했다 물론 지금 볼버트군의 창에 밀린다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병사들이 민첩한 움직임으로 전열을 구축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마스티기오스의 부장 중 한 명 에일린 레이 라키아도르는 상관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
눈이 은빛 일색으로 물들인 가도에 드문드문 발자국을 내면서 문장교병들이 전진해 움직였다 눈이 내리는 상황은 처음 시기에 비하면 한결 나아졌지만 그래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걸음만 디디면 눈의 감촉이 신발을 통해 발바닥으로 퍼져나갔다 문장교 소년병 헤이스는 언짢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힘들어도 이 행군은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냥 앞을 보고 가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한숨이 하얗게 물들어 허공으로 올라갔다 시선 끝에 성벽 도시 갈루아말리아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언제일까 조금만 더 지나면 보일려나 아무튼 자신들은 동방의 패자 볼버트 왕조의 정예들과 창을 겨루게 될 것이다 서로 이를 악물고 생명을 앗아가겠지 그런 상상을 하며 헤이스는 힘겹게 등줄기를 경련시켰다 그것은 추위에서 오..
나는 담배를 이빨에 얹으면서 엷은 향기를 콧구멍에 넣었다 공기가 습한 탓인지 냄새마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시선 끝에 보이는 가도는 최근 며칠 사이 온통 눈으로 살레이니오가 군사를 거느린 흔적을 지워버리고 있었다 마차도 제대로 다니지 않는 가도는 조용해서 공간 자체가 졸아드는 듯했다 저 멀리, 가도가 이어지는 훨씬 앞에 볼버트 왕조의 대군이 군화를 울리고 있다고 한다 볼버트 왕조의 서정 역사상 반복적으로 축적되어 온 그 야망은 대재앙의 와중이라는, 최악의 순간에 무너졌다 대마, 마인의 위협에 처해 인류로서 존망의 위기에 처했음에도 자신 세력의 사기를 위해 그 일을 감행했다 설령 자신이 목을 베이는 순간이 아주 조금 앞으로 뻗쳐질 뿐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기가 막혔다 기가 막히게 인간적이군 과거에도 어쩌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