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6장 동방 원정 편 (64)
8성 연합
은색 눈이 동요에 저려 머리가 기울었다 허공에 늘어진 은발이 카리아의 뺨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그녀의 시선은 그저 파괴를 기다리는 톱니바퀴를 향하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는 말은 겁쟁이의 것이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말장난이야" 그러면서도 카리아는 라브르의 눈길을 떼지 못했다 지독하게 뜨거운 한숨이 목구멍을 치밀어 올라오고 있었다 반면 라브르는 이제 육체의 죽음을 기다리는 몸이면서도 기묘한 침착함마저 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가 상냥하게 풀려갔다 "후...후... 겁이 없는 자는 없어요" 자신이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는 사실에 라브르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라브르는 꺼져가는 심장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는.... 보았습니다..
쾅, 하고 강한 소리가 났다 볼버트 수도 왕궁 앞 근위전에 중후한 노성이 울려 퍼졌다 "당장 부대를 재편하라! 공병은 방호책을 세우고, 진군로를 좁혀라! 일시의 유예도 줘선 안된다!" 마스티기오스는 검은 머리를 솟구치며 부서진 두 팔을 휘둘르며 소리를 질렀다 그의 기세에 눌리듯 근위전을 본부로 한 볼버트 문장교 연합병단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의 누구에게나 마스티기오스의 노여움은 구원이기도 했다 그의 소리에 계속 따르는 한 포효하는 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인드가 감정을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장군님, 1&2부대의 개편이 완료되었습니다 나머지 절반의 사천병도 두 시간 안에..." "하인드, 한 시간으로 해라, 시간이 없다 마군은 곧 이 수도로 들이닥칠 것이다" "잘 알겠습니다, 한 ..
어릴 적 누구나 듣게되는 동화 부모로부터, 형제로부터, 주위의 어른으로부터 어딘가에서, 반드시 그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아주 옛날, 악을 내뿜는 용이 있었다 용은 천여 개가 넘는 마성의 부족을 거느리고 대륙 패권을 부르짖었다 그의 입김은 대지를 작열로 바꾸고 공기를 독으로 변모시켰다 심지어 운명마저 그의 수중에 있었다 그는 온갖 악한 짓을 벌였고 언젠가 유일신 아르티우스에게 심장이 부서져 죽는 대악, 사악한 용, 브릴리간트의 이야기 아이들은 모두 그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설렜고 그러나 때로는 겁에 질려 부모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지금 그 용이 부활하면 어떻게 되냐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지금 막 나오고 있었다 볼버트 왕조 수도군사도, 시민도 살아남아 도망친 마수조차도 그것을 보고 있었다 용이, 큰..
눈앞에 아름다운 검은색의 비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압권 하나하나가 인간이 가공하는 철 같은 것보다 훨씬 튼튼해 보였다 게다가 서서히 나마 그 세부가 깊은 마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금씩 그가 마력을 삼키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것이 깨어난다면 더 이상 싸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시작되는 것은 일방적인 학살 뿐일 것이다 지금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보석 아가토스는 볼을 부풀리며, 그렇게 말했다 "괜찮겠어? 라브르 상대로 걔 혼자 둬도? 라브르는 의외로 끈질기고, 약하지도 않아 또한 그녀는 마인이기에 재해 그 자체인 존재인데" 홍련의 머리색을 펄럭이며 아가토스가 말했다 그녀의 고운 입술이 탐스럽게 물결치고 있다 그 말에는 내막이 있었다 아가토스도 라브르 일체에 전력을 쏟을 여유가 없다는 것을..
은발이 허공을 가르는 발톱이 되어 넘실거렸다 검붉은색 대검은 은의 뜻에 따라 선을 그렸다 그 호들갑스러운 몸짓에는 파괴가 담겨 있었다 정령은 주는 자요, 용이 빼앗는 자라면, 거인은 파괴하는 자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이 진가를 발휘할 때 이 세상에 파괴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마각과 검이 맞물릴 때마다 라브르가 한 발짝을 떼지 않으면 그대로 마각이 부러져 버릴 것이였다 서서히나마 라브르는 후퇴하기 시작했고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은은 걸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카리아 버드닉은 이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톱니바퀴 라브르를 파괴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루기스를 마인화시켜 동포인 피에르트 라 볼고그라드를 끌고 가게한 장본인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마인이였다 즉 인류종의 적이며, 단지 그..
마인, 톱니바퀴 라브르는 청동색의 마각을 단숨에 세 번 흔들어 뽑았다 그 무기는 매우 선명하게 날카로웠고 삼연속이 아닌, 거의 동시에 쏟아지는 지고의 칼날이였다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도 마구 휘두르는 게 아니라 모두 정확하게 급소를 노렸다 라브르는 허공에 있어도 여전히 화려한 무도를 추듯이 하여 그것을 이루었다 그녀는 바로 무대에 오른 배우, 각본에 정해진 대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춤을 추는 그런 배우였다 그것만으로 세계는 그녀의 다리 밑으로 계속 들어갈 것이다 그야말로 상대가 각본 밖에 놓인 사람이 아닌 한 말이다... 대면한 마인이 작게 이를 물었다 어깨에 올려놓은 마검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내리치기 시작했다 순간 선열한 마가 지나갔다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보..
그것은 단지 하나의 동산처럼 보였다. 햇빛을 받아 아름다운 반사를 남기는 그림자가 산을 수놓았다 때로는 넘실거리고 때로는 날숨을 내뿜는 산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살아있다 지금 그 광포한 눈동자를 형형하게 빛낸 채 그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은 거대한 몸 안에 마력이 순환되기를 고대하고 있을 는 커다란 것이였다 심장이 쿵쾅쿵쾅 뛸 때마다 마력이 온몸을 맴돌았고 주위의 마력이 점점 밀도를 더해 갔다 조금만 더 하면 그것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대륙의 패권을 가져가며 마성을 통괄할 것임에 틀림없다 구릿빛 용 샤드랩트는 그 광경이 눈에 선했다 대마, 천성거수, 용의 왕이자 삼(三) 신의 한 기둥, 브릴리간트 아득히 상공에 있으면서 양 날개의 감촉이 딱딱해졌다 샤드랩트의 해이해..
인류군 좌익 거인 카리아의 강력의 진군과 레우가 가져온 군세에 앞뒤에서 끼어든 마군은 더 이상 군으로서의 체면 따위는 유지하고 있지 않았다 카리아가 검붉은색 대검을 한 번 휘두르면 그만 절규가 터지고 사나운 본색을 남긴 것일수록 먼저 죽어나가기만 했다 본능에 잠든 겁에 질린 자는 정신없이 가도를 달리다가 조그만 틈을 찾아 달아나거나 피와 살이 되어 땅을 더럽혔다 그것은 싸움 따위가 아니었다 찌부러뜨리는 자와 찌부러지는 자가 있을 뿐이었다 군과 군의 전역으로 본다면 인류의 압승 빗자루로 먼지를 쓸어내듯 마군은 참획되고 있었다 병사들의 눈동자에는 사나움과 함께 승리의 글자가 떠올랐다 일부는 미소조차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가장 먼저 그걸 알아차린 것은 지휘관인 카리아였다. "……뭐야, 이건" 묘하게 목..
문장교 세력권의 동쪽 끝 성벽 도시 갈루아말리아 볼버트 왕조와 루기스의 합동군을 배웅했던 이 도시가 지금 또 새로 하나의 군을 마중하고 있었다 문장교-갈라이스트 신왕국군 첩의 공주를 총지휘관으로 삼는 그 군대의 위용은 매우 압권이였다 한때 궁핍과 전역의 가혹함을 견디다 못한 문장교병들도 이제 장비는 채워져 흠잡을 데가 없었다 노장 리처드 인솔의 옛 갈라이스트군까지 병탄함으로써 그 질도 한 나라의 군대 수준이였다 그 군사들이 2만을 넘으려는 수효를 가지고 진군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영웅 루기스를 선발로 내보낸 볼버트 왕조의 함락, 그것밖에 없을 것이다 "굶주린 사냥개 같다는 소문과 달리 잘 제어되고 있군" 검은색 군장을 한 공주 필로스의 진군을 여인숙 2층에서 지켜보면서 남자는 그 모습..
유사 태양 내부 독극물 쥬네르바의 근원이 만들어낸 극소 세계가 거기에 있었다 눈동자에 비치는 짙은 녹색에 농밀한 마의 기색 인간 문명 등 조금도 보이지 않고 마성에 의한 부족국가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여기에는 일체의 질서도 법도 없고 오직 신앙과 약육강식의 이치가 있을 뿐이다 미성숙한 이 세계는 혼돈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세계의 중심에는 흙과 진흙으로 쌓아올려 만든 신전이 있었는데 신전 사방에는 뾰족탑이 솟아 있고 무엇을 기리기 위해 거대한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거기에는 미완성의 미와 정밀한 장엄함이 동거했다 주변의 장대한 수목을 내려다보며 신전은 하나의 신을 모신다 이제는 이름조차 잃은 위대한 태양과 바람의 신을... "많이 그립군... 이것이 네 이상적인 세계인가?" 원전이란 가진 자의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