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최종장 신화혈전 편 (51)
8성 연합
용사 리처드 퍼밀리스의 용모는 아직 젊었을 적의 모습이였지만 그러나 그 눈빛과 목소리는 분명 세월의 노화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그 노회함과 해학을 겸비한 말투를 네이마르는 잘 알고 있었다 ".........." "어이, 입 다물고 있지 말고, 웃어라고 일단 즐기고, 눈물 따윈 다 끝난 다음에 흘리면 돼" "무...무엇을 즐기란 말입니까!" 네이마르는 필사적으로 말을 짜냈다 눈앞의 존재가 더 이상 용사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면서 말이다 몸 안쪽에서 엄청난 피를 토해내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뺨에 주름을 잡고 웃는 모습은 그녀가 아는 노장군이였다 메드라우트 보루에서 헤어진 채 만나지 못했던 리처드와 네이마르는 가까스로 재회했다 그러나 이 짧은 만남은 곧 새로운 이별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
불꽃이 터졌다 홍련의 창이 적에게 달려들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도로 튕겨나갔다 그렇게 여러 번 날라지고, 튕겨나감을 반복했고 이제는 얼마나 그것이 반복되었는지는 본인밖에 모를 것이다 옆에서 보면 수 천번 정도 반복된 것으로 보였다 이를 처리해 보이는 용사도 비정상적이지만 용사와 팽팽한 기사의 모습도 역시 비정상이였다 다만 약간의 실수가 이루어진다면 둘 중 하나의 목덜미는 끊어져버릴 것이다 이따금씩 핏방울이 튀고 있었지만 지금 서로가 노리고 있는 것은 치명상이 될 수 없는 곳 뿐이였다 기사 가르라스는 신음했다 도저히 리처드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보다 빠르고, 보다 날카로운 한계가 여기에 있었다 아이러니컬하다고 가르라스는 생각했다 인간에 한계를 느끼고 초월한 마인의 몸을 얻어도 여전히 한계..
흑검이 번개를 만들어냈고 용사의 힘에 호응하듯 우렁찬 천둥이 궁궐의 한 구석을 텨냈다 그러나 아무리 용자가 강인한 존재라 해도 상대편은 인류의 천적인 마인 그들은 보통 사람 정도라면 손가락 하나로 비틀어 내는 존재였다 본래 인류가 이길 수 없는 자들이란 것이다 더욱이 용자는 상처를 입었고 몸 속에 저주마저 자리 잡고 있었다 상황만 놓고 보면 누구의 태세가 더 유리할지 따질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리 할 말이 있는데 리처드 퍼밀리스라는 자는 규격 외의 존재였다 "천둥" 짧은 중얼거림과 동시에 번개가 시야를 가렸다 그걸 마주본 가르라스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그는 홍련의 창을 옆으로 겨누고 손끝으로 기회를 잡았고 눈 하나 깜빡거리는 틈을 두려하지 않았다 가르라스는 송곳니 같은 창으로 허공을 갈랐다 그..
리처드의 흑검은 번갯불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그를 용자라고 부르게 할 만한 능력이였다 그러나 네이마르가 가진 능력은 무기가 아닌 오히려 그녀는 문관에 가까웠다 그런 그녀가 전쟁터에서 죽는 것은 리처드가 말한 것마냥, 재능을 잘못 활용한 결과였다 애초에 전쟁터에는 처음부터 나서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튼 잘못 발을 들인 결과 흑검은 단두대의 칼날 처럼, 네이마르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그 직전 리처드의 일격이 뱀처럼 꼬부라졌다 그는 순간적으로 칼날을 돌려 전혀 다른 곳에 맞췄던 것이였다 한 번이 아닌, 두 번, 세 번, 네 번 이상으로 다툼은 계속되었고 죽을 뻔 했던 네이마르, 주변의 군사들, 심지어 가르라스까지 당황했다 리처드에게 날아왔던 열선은 창문을 깨고 주변의 벽을 관통했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가 아직 햇빛과 어둠이 서로의 칼날을 주고받고 있던 무렵... 기사와 용사가 궁궐을 유일한 전쟁터로 삼아 서로 겨루고 있었다 자신이 믿는 자를 위해 적의를 넘치며 한 발짝도 물러서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시간이 거듭될 때마다 굉음이 주위를 휩쓸었다 홍련과 흑검 어느 쪽도 한때 아군이었던 주저함 같은 게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용자 리처드 퍼밀리스는 궁전 앞 계단을 발로 밟으며 말했디 "네가 배신을 하든 말든 상관없다, 적이라면 밀고 나가겠어" 천둥소리가 공중을 지나갔다 리처드가 걸음을 내디디면 가르라스와의 사이에 있던 공간이 날아가 버렸다 순간 궁궐로 통하는 문이 강렬한 힘에 짓눌려 튕겨 나갔다 벽돌은 파편이 되고 유리는 파편이 돼 흩어졌다 궁전은 그렇게 아수라장이 되고 있..
밤이 등장했다 루기스가 가진 권능을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을 헤르트는 알 수 없었다 마검이 고요한 어둠을 이루며 의기양양하게 빛나는 햇빛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헤르트가 햇빛으로 변한 검을 휘두르면 여전히 시가지는 부서지고, 저 멀리있는 외벽마저 무너져내렸다 하지만 그중에 딱 하나 어둠만이 햇빛을 죽이고 세계에 군림하듯 대지를 짓밟고 있었다 의심도 주저도 하지 않고 헤르트는 그것이 자신의 적이라고 판단했다 양손으로 잡은 햇빛은 열을 띠며 닿은 것을 그대로 증발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적의 칼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한 손으로 잡는 것은 밤 그 자체 너나 할 것 없이 건드렸다간 모든게 사라져버릴 것이다 하지만 햇빛이 죽이기만 하는 것만은 아니였다 햇빛을 죽이는 것은 언제나 밤이지만 밤을 잡아먹는..
햇빛이 구름을 뚫고 왕도에 비쳐졌다 찬란한 날씨를 준다기보다 오히려 태양이 그 열로 생물을 죽이려 하는 듯한 열기였다 세계가 무너지며, 그 대신에 태양이 떠 올랐다 그 바로 아래에 있는 것은 단 한 명 피에르트와 엘디스가 시야에 비쳤지만 이제 어렴풋한 윤곽만 보였다 아 그렇군.... 나는 아주 당연한 듯이 이해를 해버렸다 눈이 내리고 먹구름이 끼는 이 시대 대체 왜 이 왕도 주변에만 태양이 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그건 우연이 아니라 이 녀석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태양 같은 대영웅 헤르트 스탠리 피부가 따갑고 열이 나는 것 같았다 태양 그 자체가 그 녀석의 원전... 아니, 태양이 그 녀석이 되버린 것이였다 나는 태양을 바라보듯 눈을 가늘게 뜨고 헤르트를 보았다 똑바로 쳐다보면 안구가 뭉개질 ..
신화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것은 위업을 말하는 이야기도 남을 기리는 이야기도 아닌 상상을 초월한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것을 무너뜨리는 파괴를 말한 프리슬란트의 거인 신화 모든것을 빼앗아가는 착취를 말한 브릴리간트의 천성룡 신화 모든것을 잉태하는 기적을 말한 제브릴리스의 정령 신화 사람도 마도 초월한 현상이야말로 세상이 이야기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신화가 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것은 그저 도태될 운명에 불과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영웅의 신화는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나는 황금의 머리칼과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내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죽일 수 있는 것일까 "어이, 루기스, 말할 게 있다" 바로 옆에서 메디크가 턱을 당기고 눈을 강하게 뜨고 있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
"이얍!" 궁궐 앞에서 검붉은 검이 날아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눈코 뜰 새 없이 카리아의 대검은 알류에노를 노려보며 허공을 관통했다 그것은 대검을 다루는 자의 칼날이 아니라 그저 자그만한 나이프를 다루듯이 카리아는 거대한 덩어리를 자유자재로 휘둘렀다 다른 검객들이 평생에야 겨우 다다를 검섬이 그 칼끝에서 세차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카리아의 칼날은 거인의 힘을 얻어 이제는 건드리기만 해도 상대를 파괴하는 영역에 이르고 있었다 넘치는 재능과 계속 쌓은 무술 그렇게 거인의 혈맥이 파괴의 검을 실현시키고 있었다 그녀가 있는 지점은 틀림없이 이 세계의 정점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한다면 카리아에게는 그것 밖에 없었다 피에르트처럼 마법으로 상대를 불태울 수도 엘디스의 주술처럼 적을 무찔러 ..
엘프의 여왕 핀 엘디스와 용병 브루더가 궁전 앞에 당도했을 때 이미 자리는 엄청난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갑자기 자신들 앞에서 떠난 용자 리처드는 헤르트와 함께 성녀 알류에노와 함께 있었다 그들은 마치 공손히 주군을 섬기는 기사 같기도 했다 순간 엘디스는 푸른 눈을 깜빡이며, 주위를 응시했다 그 자리엔 루기스와 피에르트, 카리아와 기사 가르라스 인간왕 메디크와 마인 아가토스, 숨 쉬는 것도 주저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 전쟁의 결착은 이 자리의 면면에 의해 지배되는 것 같았다 이들의 승패가 국가의 승패로 직결되는 것이였다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엘디스는 얼마간의 의심을 품었지만 곧 그런 사소한 일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푸른 눈이 명멸할 정도의 한기가 온몸을 엄습했기 때문이였다 눈을 가리고 싶은 악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