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8장 악덕 왕국 편 (31)
8성 연합
대성교 진지 안에서 리처드가 목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상당히 유쾌하고, 어딘가 즐거운 듯 했다 검은 칼을 허리에 매달고, 천막으로 활기차게 행동하는 그 모습은 주위 병사들의 눈을 빼앗고 있었다 그러나 지휘관이 유쾌하다는 것은 병사에게 나쁜 일은 아니였다 누구나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들었을 거라고 서로 소문을 주고받으며 어쩌면 오늘 밤에는 술이 올지도 모른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기분이 좋아 보이는 리처드와 반대로 그 뒤에 붙어있는 부관 네이마르가 초조함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얼마 안되는 인간 뿐이였다 "대대장님 몰래 의무병을 부를테니, 안정을 취하고 계십시오" 네이마르는 천막에 들어서자마자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적군과의 회담 중에, 조금이지만 지휘관이 부상을 당했다 그..
"당신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미워한 적이 있나요?" 성녀 마티아의 짜낸 듯한 목소리에 나는 순간적으로 뭐하고 대답해야 할지, 당황해하고 말았다 마티아는 도대체 나에게 어떤 말을 원하는 걸까 애초에 그녀가 감정을 수반한 말을 한다는 자체가 드문 일이다 마티아는 평소 계산적으로 행동하며 말을 하지, 장난을 치는 것 이외엔 저렇게 진지하게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였다 그게 지금은 어떻게 된 일인지 마티아는 고개를 숙인 채, 마치 소녀처럼 목소리를 떨며 가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럼요, 사람 사는데 증오든 사랑이든 있을 때가 있죠" 나는 의자에 깊이 앉아,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내 눈 속에 뭔가 타오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머리 속에 몇가지의 생각이 떠올랐다 어떻게 말을 둘러대..
나는 내게 주어진 천막 속에서, 의자에 깊게 앉아서,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라고 말해도 보이는 것은, 천막의 천조각 뿐이지만... 의자에 앉는 순간, 다리와 허리 세부에 통증이 오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나는 이 몸으로는 처음으로 마상전을 치른 탓일 것이다 팔의 힘줄도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렸는지 약간의 통증을 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지 치명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할아범, 아니 적장 리처드로부터 받은 오른팔의 상처도 얕은 것 독의 반응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이것 때문에 한 팔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약간의 상처는 입었어도, 무사히 돌아 올 수는 있었던 것이다 나는 깊게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는 짓을 여러번 했다 아직도 차가운 공기가 폐를 채워가면서, 고양되었던..
피에르트가 일으킨 마력의 회오리가 하늘을 가르고, 물방울을 삼켜갔다 그 모습은 마치 공간 자체가 큰 입을 벌리고 날려왔던 화살들을 삼켜가는 듯 했다 사람의 피를 빨아들이기 위한 흉기는 단순한 나무토막으로 바뀌어 땅에 내동댕이쳐져 갔다 아무래도 잘 된 것 같군 나는 가볍게 입술에서 한숨을 내쉬며, 굳어진 어깨를 내렸다 그것은 틀림없는 안도의 숨이였다 카리아, 그리고 후방에 대기하는 피에르트에게는 사전에 일어날 수 있는 사태를 미리 말해 두었다 그리고 실제로 일이 일어났을 땐 나 답지 않았지만, 손을 빌리고 싶다고 얘기해 두었다 뭐, 가끔은 괜찮겠지 어쨌든, 상대는 저 리처드 할아범이다 할아범이 설마 적 지휘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불러내서 그저 담소만 나누고 가버리겠는가 어떤 상황이 되든, 적 지휘관의 목을..
완연한 햇빛이 서니오 평야를 핱아갔다 평야의 중심부에서 마주보고 있는 두 기의 그림자가 살짝 뻗쳤다 "영웅이란 건 이야기 속에서나 볼 수 있는거야 그건 네가 누구 보다도 잘 알잖냐, 루기스" 리처드 할아범은 하얀 턱수염을 만지며 가볍게 말했다 나는 그저 표정이 굳어진 채로 그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었다 할아범은 반복하듯, 영웅도, 용사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바람결에 태우듯 말했다 뭘, 새삼스럽게, 틀린 말은 아니지 세상에 모든 것을 구원할 영웅이란 있을리 없고, 운명을 뒤바꿀 만한 용자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역사의 산물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기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울음소리를 내고 박해받고 돌을 맞은 여자는 성자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노리개가 된다 "네가 뒷골목에서 굶어죽을 뻔 했..
시각은 이른 아침, 막 햇빛이 뜨기 시작할 무렵 회담을 하는 곳은, 자치 도시 필로스의 눈앞에 펼쳐진 서니오 평야 그곳이 가장 공평한 자리일 것이였다는 소리 때문이였다 말굽이 흙을 두드리는 감촉이 몸을 흔들었다 평야의 중심부로 내가 들어섰을 무렵엔 이미 저 멀리서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잿빛 어둠에 익숙해질 법한 갑옷을 몸에 걸치고 어딘지 불손함을 느끼게 하는 눈을 띄운 인간이 거기에 있었다 호위를 위에 따라오던, 가자리아의 부대에게 손을 설레설레 흔들어서 멈추게 했다 그리자, 상대로 똑같이 호위부대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혼자서 평야의 중심으로 말을 타고 나아갔다 내가 아는 남자치고는 예의 바른 일 이였다 "그 동안 살 좀 뺐어, 할아범?" 서로간 내는 목소리가 더 이상 호위병에게 닿지 않을 무렵 나..
엘디스는 전령병에게 목소리를 던진 루기스를 눈동자에 비추면서 가슴속에서 약간 어이없다는 듯한 감정과 그러면서도 흐뭇하다는 미소를 보이는 듯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젖어 있었다 여전히, 루기스는 자신이 행동을 취하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이 어떤 시선을 그에게 돌리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엘디스에게는 탑 안에 있을 때부터 변함없는 루기스의 나쁜 버릇이 흐뭇하기도 했고, 때로는 어이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영웅 루기스가 적장 리처드와 단신으로 회담을 한다 그것은 틀림없이 좋은 방향 또는 나쁜 방향으로 자랄 수 있는 씨앗을 병사들에게 심을 수 잇었다 나쁜 쪽으로 키운다면, 병사들이 루기스를 불신하게 될 것이고 좋은 방향으로 굴러간다면, 틀림없이 신뢰와 신용을 낳을 것이다 혼자 위험을 무릅쓰고, 적장 밑으로 간..
유사시 군사라는 역할은 일을 어떻게 성공시켜도 공적을 칭찬받는 것도 아니고, 음유시인의 시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위험만은 전쟁터에 나가는 것보다 훨씬 높으니 단적으로 말하면, 상당히 수지 맞지 않는 임무였다 왜냐하면 군사라는 것은 전령처럼 자기편으로만 단순히 일을 고하는 것만 아닌 적군 속에 단신으로 무장없이 다니며, 그리고 자군의 의도를 오해 없이 전해야 하는 것이다 실패한다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일 수도 있을 것이고 최악의 서신을 보낸 것만으로도, 본보기로 가슴에 칼을 꽂힐 수도 있었다 이쯤 되면 전장에 나가 창을 휘두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죽는다면, 조국을 위해 죽었다고 알릴 수도 있겠지만 그냥 편지 한 통 보내고 죽는다면, 바보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날 대성교군에서 문..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리처드의 천막으로 급히 실려 온 전령에 부관 네이마르가 소리쳤다 뾰족한 앞니를 보여주면서도, 더는 일체의 감정을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그녀가 내뱉은 목소리는 매우 거칠었다 전령을 가져온 병사가 자신도 모르게 겁을 먹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마치 자신이 책망받는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대성교군 의용병들이 대의를 위해서라고 자칭하여 주변의 촌락들을 약탈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보고는 그것 뿐이였다 그리고 그건 네이마르가 가장 우려하던 내용이였고 예견조차 했던 사건이였다. 네이마르는 입안에서 혀를 찼다 뻔한 일이다. 의용병 같은 것에 대단한 의지도, 종교적 사명감도 잇을리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억압된 울분을 풀려고, 고통의 일상을 벗기 위해 창을 든 사람들일 뿐이였다. 그런 그들..
자치도시의 통치자 필로스의 손가락이 두 번 책상 위를 두드리자, 마른 소리가 났다 사무관은 그 행동을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눈을 내리깔고,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이 방, 필로스의 집무실을 찾은 사람은 누구나 한결같이 같은 태도를 취했다 자치도시 필로스의 통치자, 필로스 트레이트 트레이트란 대대로 이 도시를 다스려 온 사람들의 가문명 도시의 이름인 필로스와 통치자의 증표인 트레이트 가 대대로부터 이 두 이름을 계승해 온 것이였다 그런 이름을 가진 그녀에 대한 시민들이 어딘선가 지배자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오늘날 필로스에 대해 주어지는 시선은 그보다 더 뭔가 무시무시한 것을 기피하는 듯한 분위기가 섞여 있었다 이유는 그 출신과 경력에 있었다 현대 필로스는 원래 통치자..